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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한국 기독교 순교자 기념관(1)

오늘 하루 온전히 오빠가 차로 우리를 위해 시간을 내주겠다 하여 아침 일찍 기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먼저 어머니 산소와 시부모님 산소를 갔다가 오후에 "한국 기독교 순교자 기넘관"을 가기로 했다 영락 공원 묘지에 모신 어머니 산소에 가서 비석과 석테를 제대로 하였나 살펴본 후 곧 바로 수년전에 공원 묘지에서 양평 하늘 숲 수목장으로 모신 시부모님 산소에도 갔다 두 산소 다 일반 공원 묘지보다 훨씬 정숙하고 경관도 좋고 잘 가꾸어져 있어 마음이 편안하고 감사하다 점심 때가 다 되어 일단 그냥 찾아 들었는데도 맛이 일품이고 값도 저럼한 멸치국수로 간단히 점심을 먹고 오빠도 가보고 싶었다면서 흔쾌히 같이 가기를 원하여 부담없이 용인에 있는 "한국 기독교 순교자 기념관"으로 향하였다. 오늘은 완전 횡재한 셈..

13. 복원된 소래교회

용인 총신 대학원 양지 캠퍼스에 복원된 소래교회를 찾아가려고 길을 나섰다 구글 길 찾기에서 대충 보고서 지하철을 타고 기흥역에서 내려 버스로 갈아타고 내려 또 버스로 갈아타려니 30 여분을 기다려도 마지막 버스가 오지 않아 더위에 참기가 너무 힘들다 견디다 못해서 학생인 듯한 사람에게 총신대 양지 캠퍼스를 물어보니 마침 총신 신대원 학생이라 여기서 버스는 거의 없다시피 간간 너무 늦게 오니 택시를 타면 기본 요금이란다 바로 택시가 있길래 탓더니 금방 총신대 캠퍼스인데 요금 3000원이다 맙소사! 둘이서 버스비만도 2500원인데 500원 때문에 이런 미련스런 고생을 했나 싶어 억울하다 ㅠㅠㅠ 택시를 타고 총신 신대원 입구로 들어서서 소래교회 표지판을 따라 5분여 더 가서 내려 야트막한 언덕길을 조금 걸어가..

12. 정동 제일 감리교회

오늘도 무척 무더운 날씨지만 정동 교회를 가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지하철을 타고 시청앞에서 내려 덕수궁쪽 으로 나와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걸으며 정동교회로 향했다 고궁의 돌담길은 그 엣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그대로인데 남편과 연애시절 참 많이도 걸었던 곳이어서 감회가 새롭다 이제까지 영국 대사관이 점유하면서 제한됐던 덕수궁 돌담길 미 연결 구간 170m가 영국 대사관측과 문회재청의 협상을 통해 원만히 해결되어 올 10월까지 모든 공사를 마치고 1100m의 돌담길 전체를 돌아가지 않고 걸을 수 있게 된다하니 너무 잘된 일이다. 아! 그때 와서 젊은 날을 추억하며 다시 한번 남편과 함께 걸어 보고 싶다! 정동 제일 교회 정문 정동 제일교회는 구 한말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가 1885년 10월 11일에 정동에..

11.세계 성막 복음 센터(2)

드디어 오늘 관람의 하이라트인 성막을 보러 갈 차례이다 이층에 실물 크기와 성경에 있는 그대로 성막과 성막 기구들을 제자리에 재현해 놓았다 성막안에서는 촬영 금지라서 눈치껏 몇장 찍었는데 보아하니 안내하시는 목사님도 슬쩍 눈 감아 주시는 듯 하다 아마도 멀리서 더운데 노인네들이 왔다고 봐주시는게지? ㅎㅎㅎ 성막 전체의 사진이다 성막뜰에 번제단이 있고 그 앞에 물두멍이 보이고 그 앞에 성소 휘장이 보인다 성소 안에 들어가면 지성소가 있다 성막 뜰과 성소. 지성소가 다 실내에 있는지라 성막 뜰이라는 실감은 안났지만 그래도 번제단과 성소 그리고 지성소를 잘 재현해 놓아 좋았다 펜실바니아 랭커스터에 있는 성막 뜰은 노천으로 되어있어 성막뜰과 울타리.또 성막으로 들어갈때 실감이 났는데 랭커스타의 성막은 소박한 멋..

10.세계 성막 복음 센터(1)

평택에 있는 세계 성막 복음 센터를 가기로 하고 최성준 장로님께서 아침 일찍 차를 가지고 오셔서 오빠네 부부, 우리 부부, 최장로님 부부 이렇게 여섯이 길을 나섰다 최 장로님네는 지난해 오빠네와 함께 토론토에서 워싱톤까지 차를 가지고 여행하는 길에 우리집에 들려 하루밤 지내고 가신 인연이 있어 지난해에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단원으로 있는 따님 덕분에 멋진 저녁식사와 메트로 폴리탄 극장에서 오페라 '라보엠'까지 초대해 주셨다 정말 행복한 밤을 보낸 기억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는데 또 이렇게 동행까지 해 주시니 너무나도 감사하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이런 좋은 관계와 만남이 우리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 또 하나의 축복인지 모른다 오빠네 용인 집에서 1시간 반 남짓 달려 평택 세게 성막 복음센터에 도착했..

9.절두산(2)

.잘 가꾸어진 정원과 숲에 군데 군데 이런 조각상들이 있어 천천히 생각하며 산책하기가 참 좋다. 팔마(종려나무 가지)를 든 예수상(최봉자 수녀작) 믿음을 증언한 순교자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음을 상징하는 승리를 의미하는 종려나무 가지를 손에 들고 못자국이 난 손을 들고 서 있는 예수 그리스도 상이다. 성 요한 바오로 2세(Sanctus Ioannes Paulus II,1920.2.18~2005.4.5) 흉상 폴란드 제2공화국 바도비체 출신으로 교황 재위 기간은 197810.16~2005.4 선종때까지이다 한국 방문은 두번인데 첫번째는 한국 천주교 200주년 축하를 위해 1984.5월이고 두번째는 1989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 성체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김대건(안드레아) 신부상. .1784년 한국..

8.절두산 성지(1)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과 양화진 홀을 둘러보고 곧바로 절두산 성지로 향했다 절두산과 외국인 선교사 묘원은 양화진 공원을 사이에 두고 인접해 있다 절두산은 천주교의 성지이고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은 기독교의 성지인것으로만 알지만 둘다 복음으로 생명까지도 아끼지 않았던 선조들과 외국인들이기에 우린 똑 같은 성지로 소중히 가꾸고 경건한 마음으로 순례하고 기도해야 할 것이 아닐까 싶다 시간이 점심때가 지나 배가 조금 고팠지만 나갔다가 또 들어오기도 시간이 너무 걸릴 듯 하고 하여 조금 무리하여 양화진 공원을 천천히 걸어 가며 절두산으로 향했다 공원안에 양화진의 옛 터의 일부를 장대석으로 구획해 놓았다 멀리 한강이 보이는 절경에다 잘 가꾸어진 숲길은 충분한 휴식과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이다 천천히 걸으면서 ..

7.양화진 홀

묘원을 대충 둘러보고 나니 안내하시는 분께서 양화진 홀로 가라한다 양화진 홀은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 안에 백주년 선교 기념관과 마주 자리잡고 있다 양화진 홀 홍보관은 마포 구청과 100주년 기념교회가 공동으로 건립하여 2008년 3월 24일에 개관하였다 지상 4층, 지하 4층 규모로 선교사들의 활동상을 전시한 양화진 홍보관과 예배실 등으로 구성돼 있다 백주년 기넘 선교관과 마주 보고 있는 왼쪽 건물이 양화진 홀이다 양화진홀은 우리 민족의 개화기 역사, 선교 역사의 단면을 전시하여 재 조명하고 이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되새기게 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나라와 이 백성을 너무나도 사랑하셔서 저들을 보내어 대를 이어 가면서까지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하게 하셨는지 비단 신자뿐만 아..

6.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6)

윌리엄 리처드(Brigadier Williams. Richards, 이도식1878~1920.2.5) 묘비에는 "Duty done Victory Won" 의무를 다하고 승리했다 1878년 영국 런던에서 존 리처드 부장의 7남매 중 장남으로 출생했다. 열두 살 때 구세군의 어머니로 불리는 캐더린의 묘 앞에서 헌신을 다짐했다 런던 만국 사관 학교를 졸업하고, 덴마크에서 7년간 선교 사관으로 봉직하였으며 1909년 2월 8일 메리 킬로(Richards, Mary K.) 부관과 결혼하고 만국 본영의 문학부에서 봉직했다. 1913년 인도네시아 자바 섬에 선교 사관으로 파송되어 지방 장관과 청년부 서기관으로 봉직하였다. 1918년 6월 2일 한국 구세군 서기장관으로 명령을 받아 부인과 세 자녀를 데리고 내한하였다. ..

5.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5)

프란시스 킨슬러(Francis Kinsler권세열 (1904.1.13~1992.9 )B32-33 아내 도로시 W. 킨슬러(Dorothy Woodruff .Kinsler 1907.1.20~2001.3.14) 부부 묘역 부부의 비문에는 '라고 쓰여 있다“Served Korea for Christ 1928-1970”라고 쓰여 있다 "그리스도를 위해 한국을 섬겼다 1928~1970" 성경 구락부와 군목제도 창설에 공헌한 킨슬러 선교사 프란시스 킨슬러(Francis Kinsler권세열 1904.1.13~1992.9 ) F. 킨슬러는 1904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출생하여, 1925년 메리 빌 대학과 1928년 프린스턴 신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는 1928년 10월 4일, 24세의 나이에 미국 북 장로교 선교사로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