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성지 순례기

7.양화진 홀

bonitahuh 2022. 10. 20. 04:47

묘원을 대충 둘러보고 나니 안내하시는 분께서 양화진 홀로 가라한다

양화진 홀은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 안에 백주년 선교 기념관과 마주 자리잡고 있다

양화진 홀 홍보관은 마포 구청과 100주년 기념교회가 공동으로 건립하여 2008년 3월 24일에 개관하였다

지상 4층, 지하 4층 규모로 선교사들의 활동상을 전시한 양화진 홍보관과 예배실 등으로 구성돼 있다

백주년 기넘 선교관과 마주 보고 있는 왼쪽 건물이 양화진 홀이다

양화진홀은 우리 민족의 개화기 역사, 선교 역사의 단면을 전시하여 재 조명하고

이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되새기게 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나라와 이 백성을 너무나도 사랑하셔서  저들을 보내어

대를 이어 가면서까지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하게 하셨는지 비단 신자뿐만 아니라 비신자들에게도

꼭 한번 권하여 돌아보기를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선교사들의 신앙과 고귀한 삶을 기리고 조명하는 공간이며 또한 그분들이 조선에 들어와 어떤 활동을 하였는지

어떤 영향력을  발휘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자료들이 주제별로 전시되어 있다.

저들은 자기의 생명은 물론 가족까지도 희생하면서

의료와 교육. 생활에 이르기까지 어떤 희생과 헌신을 했는지 돌아볼 수 있는 공간이다

입구쪽 문은 작고 무슨 창고문 같아 의아했는데 들어가 보니 그 뜻을 알았다

사진에 보듯이 왼쪽 들어가는 문(양화진 홀 글씨가 보임)이 입구쪽 문이고

오른쪽 중앙 나오는 문은 제대로 번듯하다 ㅎㅎㅎ

문 안으로 들어서니 아주 캄캄해서 실내가 안보이는데 입구에서 안내하시는 집사님이 안으로 들어가란다

더듬거리면서 들어가니 갑자기 바닥에 파도가 물결치는 영상이 깔리면서

성경 구절들이 바다 물결 영상 위에 뜨면서 바뀐다

선교사들이 이 땅에 첫 발을 디딜때 거친 파도를 해치며 배를 타고 온 것을 상징하는듯 하다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들을 왔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다"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지금의 이 나라를 이룩했다

비록 선교사들의 개인적인 희생은 너무 컸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다!!!

말씀을 새기면서  내가 마치 바다를 건너는 것같은 느낌으로 걸어 들어가니 가슴이 뭉쿨해지며 눈물이 난다

바닷길을 건너 전시실로 들어가니 비로소 은은한 조명이 비추는 벽면에 이런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이제 하나님이 조선을 이처럼 사랑하사 행하신 일들이 전시실에 펼쳐진다

 

그렇다! 진실로 그러하다!

하나님이 조선을 아니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셨고 지금도 여전히 사랑하신다!!

 

우리나라는 우리는 결코 망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나라.하나님이 도우시는 나라와 백성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

전시실은 블랙과 화이트의 조화를 통해 관람자들이 보다 집중해 전시물을 볼 수 있게 배려하고

역사적인 사건들을 연대별로 잘 분류하고 정리해서 이해하기 쉽고 보기에 편안하다

정돈된 전시와 갈끔하고 세련된 디자인이 돋보인다

선교사들의 헌신적인 사역도 조선의 험난한 역사도 다 하나님의 섭리안에서

이루어 졌음을 진실로 믿는다

나라도 개인도 이 세상의 되어지는 모든 일들이 다 하나님의 섭리안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알때

우린 진정 겸손할 수 밖에 없고 감사할 수 밖에 없다

선교사들의 활동 연대표를 잘 정리해서 한 눈에 여러 선교사들의 활동 시기를 알 수 있다

한글 번역 성경을 시대별로 잘 분류해서 전시해 놓았다

초기 한글 성경

로제타는 1890 년 10월 의료 선교사로에 온지 일년만에 뒤따라 온 약혼자 윌리엄 홀과 한국서  결혼식을  하고

결혼한지 이년만에 남편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내고 어린 아들과 태중에 있는 아이와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로제타는 돌아간지 불과 3년도 채 안되어 어린 아들과 유복자로 뉴욕서 낳은 딸 에디스를 데리고

윌리엄이 이루지 못한 조선을 향한 사랑을 내가 이루리라 결심하고

 1897년 11.10일 다시 한국에 와서  의료 선교와 맹인 교육에 헌신하였다

로제타의 육아일기인데 아이들의 손을 대고 맞추어 그려놓고 머리카락도 조금 잘라 붙여 놓았다

그 바쁜 중에서도 혼자 아이를 키우며 이렇게나 섬세하고 자상하게 육아일기를 썼을까?

아들 셔우드 홀과 유복자로 태아난 딸 에디스의 육아 일기인데 안타깝게도
에디스는 태어난지 3년 4개월만에 하늘나라로 갔다

요즘 홍성사에서 "로제타의 일기 총 6권" 출간하였는데

4권은 선교 일기이고 5,6권은 아들 셔우드 홀과 어릴때 죽은 에디스에 관한 육아일기이다

로제타의 기행 편지 "프란스시코에서 서울까지"

로제타는 고향집을 떠난 지 55일 만에 한양에 도착했다

그중 샌프란시스코에서 일본 요코하마로 가는 증기선 '오세아니 호'에 승선한 9월 4일부터
서울에 들어올 때까지 40일 동안의 여정을 2점의 두루마리 기행문으로 남겼다

폭 17센티미터의 한지 34매와 각종 사진 등을 이어 붙인 두루마리 전체 길이는 약 30미터에 이른다

14장으로 구성된 기행 편지 첫 장의 제목은 'Toward the Setting Sun (해가 지는 곳을 향하여)'이며,

마지막 장의 제목은 ' In Korea(한국에서)'이다

로제타의 기도수첩 24권

어찌 이리도 많이 기도했을까? 그녀의 그 놀라운 사랑과 능력이 기도에 있었음을 보여 주는 증거이다

꼼꼼하게 세밀하게 기행기며 일기며 기도수첩까지 기록한 그 성실함에 절로 감탄할 뿐이다

로제타의 외아들 셔우드 홀의 유품과 비단편지

안식년을 맞은 셔우드 홀에게 1930년 해주 지방 교역자들이 보낸 비단천에 쓴 편지

휼륭한 믿음의 어머니 로제타가 있었기에 셔우드 홀 같은 아들이 있지 않았나 싶다

한글과 영어 성경을 대조하며 군대 군데 메모를 해 놓은 모습이 정말 감탄스러울만치 정성스럽고 세밀하다

얼마나 손에 닳도록 잡고 책장을 넘겼으면 이리도 낡았을까?>

셔우드 홀이 쓰던 물건들과 그가 쓴 책"With Stethoscope in Asia: Korea.(조선 회상)"이다

조선에서 선교 개척자로 일생을 바친 의사 부부였던 윌리암 홀과 로제타 홀 사이에서 태어나

 훗날 아내와 함께 의료 선교사로 조선에 다시 와서 16년의 세월을 보낸 닥터 셔우드 홀의 자서전이다.

구 한말 부터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조선에서의 치열했던 삶의 모습들을 기록한

홀 일가의 이야기에는 그들이 이 땅에서 보여준 의료.교육. 선교에 대한 놀라운 업적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겪은 아름답고 재밋는 그러면서도 힘들었던 일들이 코끝이 찡한 에피소드로 가득 담겨 있다.

죽어서도 이 땅에 묻히길 소원했던 셔우드 홀과 그의 아내 매리언 홀의

조선에 대한 사랑과 헌신, 그리고 그들의 순수한 믿음을 이 책은 담아내고 있다

 

그는 "나의 청진기로 조선 사람들의 심장을 진찰할 때면 내 심장도 조선과 함께 뜁니다.” 라고 했다

사실 나도 아직 못 읽어 보았는데 근간에 꼭 읽으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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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들이 조선에 대해 쓴 책들을 액자에 넣어 전시해 놓았다>

게일이 쓴  " Korea in Trasition (전환기의 조선)과

헐버트의 "The Passing of Korea(대한 제국 멸망사)"등이 전시 되어 있고

언더우드 부인의 릴리아스 호튼의 저서"조선 견문록" 도 액자에 전시되어 있다

특히 헐버트는 우리 조선사람 보다도 더 조선을 사랑하고 혼신의 힘을 다해 조선을 지키고자 노력했다

그는 이 책의 서두에 이렇게 썼다

"비방이 그 극에 이르고 정의가 점차 사라지는 때에 나의 지극한 존경의 표시와
변함 없는 충성의 맹세로서 대한제국의 황제 폐하(陛下)에게,

그리고 지금은 자신의 역사가 그 종말을 고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지만 장차 이 민족의 정기(精氣)가
어둠에서 깨어나면 잠이란 죽음의 가상(假像)이기는 하나 죽음 그 자체는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게 될 대한제국의 국민에게 
이 책을 드립니다."

."

J.S 게일 선교사가 쓴  " Korea in Trasition (전환기의 조선)".

선교사 중에서 조선의 역사와 문화에 가장 해박했던 게일 선교사는

그의 저서에서 조선의 인문 지리와 사회 문화 전반을 잘 기술하고 있다

그는 조선이 제일 필요한 것은 교육과 기독교 복음이었다고 보았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발행된 크리스마스 씰(Chiristmas  Seal)

크리스마스 씰은 덴마크 코펜하겐의 한 우체국 직원 아이날 홀벨(Einar Hollbelle)이 당시 많은
어린이들이 결핵으로 죽어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연말에 쌓이는 크리스마스 우편물과 소포를 정리하면서

동전 한 닢 짜리‘씰’을 우편물에 붙여  판매되는 동전을 모아 많은 결핵 퇴치 기금을 마련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국왕 ‘크리스찬 9세 ’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마침내 1904년 12월 10일 세계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하게 되었다.

이후 이 소박한 발상은 댄마크 뿐 아니라 세계적인 호응을 얻어 결핵퇴키 기금 마련을 위한 모금 운동으로 확산되었다

 

우리나라는 셔우드 홀이 최초로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하고 판매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셔우드 홀이 일제에 의해 강제로 출국되면서 씰 판매도 중단되었다

이후 해방이 되고 6.25 전쟁이 끝난 직후 1953년 11월에 대한 결핵협회가 정식으로 창립되면서
씰 제작과 판매가 다시 이루어 졌다

선교사들은 이렇게 다양하게 우리나라에 선한 영향을 끼치면서 사역하였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아주 작은 것 하나라도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다시 한번 생각하며 고민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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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들은 성경 번역과 보급을 위해 참으로 많은 수고와 헌신을 아끼지 않았다

지금 우리가 마음껏 성경을 구입하고 읽고 하는 것도 다 저들의 수고와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이 이 한글 성경을 손에 잡고 책장을 넘기며 읽었으면 이렇게나 낡았을까?

주머니용 선교수첩에 한글로 기록한 것을 보면 얼마나 우리 말을 익히고 사랑했으면 그랬을까?

양화진의 역사를 기록한 벽면 아래 깨어진 질그릇 항아리가 하나 놓여 있다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깨어진 질그릇 같은 존재이다

질그릇 안에 무수히 많은 말씀들이 홀래그램 빛으로 쏟아진다

참으로 탁월한 발상과 디자인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질그릇에 쏟아지는 말씀을 내 손에 받아 본다 "일어나라 함께 가자"

주님 어디로 가야 하나요? 맘 속으로 질문하며 말씀을 새겨 본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아가 2:10)

남편의 손에 받은 말씀 "가서 너도 이와 같이하라"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에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눅 10:30)

남편과 함께 받은 말씀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마가복음 16:15)>

깨어진 질 그릇에 말씀들이 홀로그램으로 비치는 모습

오늘도 우리 주님은 쉴새없이 깨진 질그릇 같은 내게 말씀으로 비추시는데 참으로 말씀을 제대로 받기나 하는지?

말씀을 믿음의 손 내밀어 받지 않으면 깨진 질그릇은 말씀을 흘러버릴 수 밖에 없다

깊이 생각하게 한다. 주님 불쌍히 여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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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진 외국인 묘원의 묘비 탁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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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올리고 기록했어도 전시실의 극히 적은 일부분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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