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을 답사의 마지막 코스로 오늘은 덕수궁과 경희궁을 보러 나섰다
덕수궁은 나와는 꽤 친근한 곳이다
남편과 연애할때 만나던 장소가 덕수궁 앞이거나 중앙 우체국이었고
덕수궁 돌담길은 우리가 참 많이 걸었던 곳이다
결혼하고도 봄에 덕수궁 뒷뜰에 피는 모란을 보러, 가을에는
덕수궁에서 매년 열리던 국화전시회를 보러 가곤 하였다
덕수궁 자리에는 조선 9대 임금인 성종의 형 월산대군의 집이 있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한양으로 돌아온 선조는 궁궐이 모두 불에 타고 없어서
월산대군의 집을 임시 거처로 정하고 선조 26년(1593)부터 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근처의 계림군과 심의겸의 집 또한 궁으로 포함하였다.
선조의 뒤를 이은 광해군은 즉위 3년(1611)에 이곳을 경운궁으로 고쳐 부르고
1615년 창경궁으로 옮길 때까지 왕궁으로 사용하였다
그후 선조의 왕비인 인목대비가 경운궁으로 쫓겨나와 있게 되었는데
그 후로 광해군은 이 곳을 서궁으로 낮추어 부르게 하였다.
광해군이 인조반정으로 1623년에 물러나면서 인조는 즉조당과 석어당만을 남기고
나머지 건물들을 옛 주인에게 돌려주거나 없애버렸다.
그 뒤로 고종황제가 러시아공관에서 옮겨오면서 다시 왕궁으로 사용되었는데,
그 때부터 이 궁은 비로소 궁궐다운 건물들을 갖추게 되었다. .
비록 조선 후기에 궁궐로 갖추어진 곳이지만, 구한말의 역사적 현장이었으며 전통 목조건축과
서양식의 건축이 함께 남아있는 곳으로 조선 왕조의 궁궐 가운데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궁은 조선 시대에는 경운궁(慶運宮)으로 불려왔으며, 고종의 재위 말년 약 10년간 정치적 혼란의
주무대가 되었고,고종황제가 1907년 왕위를 순종 황제에게 물려준 뒤에 이곳에서 계속 머물게 되면서
고종 황제의 장수를 빈다는 뜻의 덕수궁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궁내에 서양식 건물이 여럿 지어진 것이 주목된다
1904년의 큰 불로 대부분의 건물들이 불에 타 없어지자 서양식 건물인 석조전들이 지어지면서
, 원래 궁궐 공간의 조화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 중 가장 큰 변화는 정문이 바뀐 것이다.
덕수궁의 정문은 남쪽에 있던 인화문이었는데
, 다시 지으면서 동쪽에 있던 대안문을 수리하고 이름도 대한문으로 고쳐 정문으로 삼았다.
조선시대에는 수문군이라는 군대가 궁궐을 경비, 순찰하는 업무까지 맡고 있었다고 한다.서울시에서는 1966년도 부터 전문가의 고증을 거쳐 이를 재현중인데 예전엔 궁성의 개폐의식, 시위의식, 행순등이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현재의 수문장 교체식은 이 세가지 의식을 하나로 결합하여 재현중이란다
1. 왕궁 수문장의 교대의식을 알리는 개식 북치기
2. 군호(암호)를 알려주는 절차인 군호 하부 의식
3. 도성을 순찰한다는 의미의 시청광장 순라 의식
4. 교대 절차를 보여주는 교대 의식
5. 모든 의식을 마쳤음을 알려주는 예필 의식으로 이어지며 진행하는데
약 20여분에 걸쳐 품위있고 절도 있는 수문군의 교대 의식을 화려하게 보여준다.
교대식 순서에 맞추어 해설사가 한국어.영어. 일본어.중국어로 해설을 하는데 어찌나 말이 빠른지
난 도저히 못 알아 듣겟는데 아마 순서를 쫓아가며 네 나라 말로 하자니
빨리 할 수 밖에 없나보다 생각하지만 그래도 너무 빠르다
오히려 경복궁 교대식보다 의상이며 식들이 더 화려하고 관람객과 교통하며 치뤄지는 느낌이다
광명문(光明門)은 함녕전의 정문으로, 1904년 화재로 소실되어 현재는 문만 남아 있다.
현재 이곳에는 흥천사 범종,자격루의 일부,화차가 전시되어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전문형식으로, 중앙 도리간에 판비가 있었으나 이전되면서 없어졌다.
석조전의 동관석조전 서관은 1900년 착공하여 1910년 완공된 지상 3층 연건평 1,247평의 석조 건물이다.
기본설계는 영국인 G.D.하딩, 내부설계는 영국인 로벨이 하였으며, 1900년에 착공하여 1910년에 완공되었다.
고전주의적 3층 건물로 이오니아식 기둥과 박공부분이 특징이다.
1층에는 시종들의 거실, 2층에는 접견실, 3층에는 황제·황후의 침실, 욕실 등을 배치하였다
.
해방이후 미소공동위원회, 국립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궁중유물전시관으로 사용되었다.
1937년 별관을 건립하여 이왕직박물관으로 사용하였으며, 현재는 덕수궁미술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아쉽게도 수리 중이어서 내부는 보지 못하고 돌아섰다
석조전의 서관은 1937년 이왕직 박물관(李王職博物館)으로 지은 건물로
8·15광복 후 동관의 부속건물로 사용되었다.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이 1998년 12월에 개관되어
덕수궁미술관이란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다.
미술관이 자리한 덕수궁(德壽宮)의 석조전 서관(石造殿 西館)은 1938년에 완공된
우리나라 근대 건축양식을 대표하는 건물이다.
마침 우리가 간 날은 한국 리얼리즘 사진의 선구자로 꼽히는 고(故) 임응식(1912-2001) 작가의 예술의 기록이라는
사진전이 열리고 있어서 한번 쭉 둘러 보았는데 우리나라 근대사의 흐름을 보는듯 한데
실내가 너무 더워서 대충 보고만 나왔다
그 유명한 사진 "구직" 을 보고서야 비로소 아! 그 작가이구나! 하고 알았다
모자를 푹 둘러쓰고 헐렁한 셔츠 앞에다 구직이란 글자를 달고 지친듯 기대어 서 있는 그 남자 말이다.
석조전의 앞의 정원은 남북축선 위에 동서가 대칭되도록 중심에 분수대를 놓고
원형과 방형이 조합된 연못을 파고그 안에 네 마리의 물개를 동서남북으로 배치하였다.
연못 주변은 방형으로 2단의 낙차를 두어 구획하고 조경했다 우리나라의 최초의 유럽식 정원이라 할수 있겠다
준명당(浚眀堂)은 1904년의 화재로 다시 지어졌다.
원래의 준명당은 정면 6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1897년에 새로 지은 내전(內殿)의 하나로 한때 고종이 거처하며
외국사신을 접견하던 곳으로, 후에 고종과 순종의 초상화를 봉안하였다.
준명당은 서쪽과 북쪽으로 가퇴를 덧달아 내놓았으며, 뒤쪽에 온돌방 4칸을 덧붙여
전체적으로 'ㄴ'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다.
왼쪽은 준명당 오른쪽이 즉조전으로 두 건물이 복도를 연결되어 있다
1907년 8월 순종은 존덕전에서 즉위하였고 고종의 순헌귀비 엄씨(純憲貴妃嚴氏)가 즉조당에서 별세하였다
함녕전
함녕전은 광무 1년(1897년)에 지어진 목조건물이다.
정면 9칸, 측면 4칸에 한쪽 후면 4칸이 더 붙은 'ㄱ'자형을 하고 있으며, 익공으로 결구된 간결한 건물이다
고종이 왕위를 물려준 다음 순종(純宗)이 창덕궁으로 옮기자 고종이 13년간 거처하던 침전으로
1919년 이곳에서 승하하셨다.
석어당 앞 뜰에서
석어당은 궁내 유일한 2층 전각으로 비깥에서 본 아름다운 석어당 전경
정면 3칸, 측면 4칸의 이익공 팔작지붕으로 기단은 장대석을 3단으로 돌려 쌓고 알맞은 기둥 높이에 간결한 익공을 얹어 처마를 받게 하였다.
팔작지붕의 마루에는 양성(兩城)하고 귀마루에는 용두와 잡상(雜像)을 얹어 잡귀와 화재에 대비하고 있다.
현재는 건물 내부를 고종황제의 침전으로 복원하여 당시의 궁중 생활상을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정관헌 궁궐 안의 양관(洋館)으로는 최초의 것이다.
동양적인 요소가 가미된 서양식 정자인 정관헌(靜觀軒)은 1900년경에 건립되었다.
고종이 다과를 들고 음악을 감상하던 곳으로, 한때는 태조·고종·순종의 영정을 봉안하기도 하였다.
벽돌을 쌓아 올린 조적식(組積式) 벽체에 석조기둥을 세우고 건물 밖으로 목조의 가는 기둥을 둘러
퇴를 두르듯이 짜여진 건물이다.
덕홍전 뒤편과 정관헌 사이에는 작고 아담한 후원이 있고 예전에는 러시아공사관으로 통하던 문이 있었다고 한다
4월에 한국을 방문한 이재익 장로님 조정희 집사님에게 먼저 온 우리 부부가 안내겸 덕수궁을 가서 한컷!
미소 공연 매표소 입구
미소MISO(美笑)'는 우리의 고전인 춘향전을 소재로 가장 한국적인 아름다움과 사랑을 보여주는
창작 뮤지컬이라 할 수 있다.
1997년 전통예술무대로 출발하여 14년간 3,175회의 공연기록과 내 외국인 약 55만 명에게
우리 전통예술의 아름다움과 신명을 알려왔다.
사실 뮤지컬이라지만 노래는 고작 두곡 부르는게 고작이고 거의 무용극이라해도 과언이 아닐정도이다
그런대로 한국 전통공연예술 장르가 총망라되는 춤과 소리, 기악 연주, 사물놀이가 신명나게 펼쳐진다.
무용 37명, 기악2 21명, 사물 13명으로 총 80명의 출연진에
총 3팀으로 구성되어 있고, 회당 30명이 출연하는 대작이다
미소 공연장 입구에 걸려 있는 미소 장면 포스터
미소 공연을 보고 난 후 출연 배우들과 함께
어릴때 브라질로 이민가서 결혼한 이장로님 내외가 모처럼 고국 방문을 하셨고 또한 친구 김권사도
모국 방문 중이어서 우리 부부가 다 같이 우리의 전통예술을 보는게 좋겟다 싶어
특별히 저들을 초청하여 함께 보니 감개무량하다!
다들 좋아하고 기뻐하니 너무 기쁘고 감사하고 다들 우리의 전통 문화에 매료되어 신명난 아름다운 저녁이었다
아바하 브라카 식당
공연후에 사랑하는 지인들과 어떤 식사를 할까? 하고 근처 좋은 식당을 인넷넷 검색하던 중에 찾아낸 식당이디 같은 주인인 식당인데 지하 1층은 아바하로 조금 싸고 1층은 브라카인데 조금 더 고급스런 식사를 할 수 있다
우리가 들어간 곳은 부담스럽지 않은 아바하이지만 음식도 소박한 경양식으로 맛있고 값도 비싸지 않아 부담스럽지 않고 좋았다
카페같기도 하고 빈티지한 인테리어로 그릇들과 수예품으로 아기 자기하게 꾸며져
분위기도 있고 더러 판매도 하는모양
사랑하는 지인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좋은 대화를 나무면서 행복한 하루를 마감하니 상쾌한 피로감이 졸리듯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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