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돌로로사 9지점까지 조금씩 십자가를 나누어 지면서 우리 일행은 십자가 길 체험을 마치고
Via Dolorosa (십자가의 길) 10~14지점이 있는 최종 종착지인
거룩한 무덤 교회인 성묘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re)로 들어선다
성묘교회는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올라가신 예루살렘 성 서쪽 언덕에 위치한
골고다 (해골이라는 뜻. 영어로는 갈보리 )언덕의 그 무덤 위에 2개의 돔과 2층 구조로 건축되었다
골고다 언덕은 본래는 예루살렘 성 밖이었으나 오스만 터키 시대에 예루살렘 성을 다시 건축하면서
원래 예루살렘 성보다 더 넓게 건축하였기 때문에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역사 기록에 의하면 AD 135년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유대인들의 폭동을 진압하고
예루살렘 도시 이름을 "Aelia Capitoliria"라고 바꾸고 기독교인의 흔적을 없애버리려고
예수님 십자가 자리에 비너스 신전을 세웠고 무덤자리에는 제우스 신전을 세웠다.
그 후 200여년의 세월이 흐른 후 로마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기독교가 공인되자 믿음이 신실했던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St. Helena)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골고다 언덕과
예수님의 무덤을 찾고자 성지를 순례하게 되었는데 AD 326년에 뜻밖에도 그 자리에서 지하 흙속에 파묻힌
"유대인의 왕 예수" 라고 쓰인 패를 포함하여 3개의 십자가와 한 개의 못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 곳이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장사되시고 부활하신
바로 그 곳 골고다 언덕임을 확신하고 로마가 세운 신전들을 다 허물어 버리고 10년에 걸친 공사 끝에
AD 336년 부활절 예배를 드리기 위한 거대한 바실리카형 교회당을 건립하였다.
그녀는 이스라엘을 방문하면서 3개의 교회를 지었는데 베들레헴의 예수님 탄생교회, 감람산의 주기도문 교회와
이곳인 성묘교회를 지었으며 이 교회들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중 하나라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세워졌던 성묘교회는 AD 614년 페르시아의 침공으로 파괴되고 말았고
그후 다시 건립되었지만 1009년 이슬람에 의해 다시 파괴되고 만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성묘교회는 1149년 십자군시대에 다시 세워졌고 1808년에 화재로 인하여
건물 일부가 소실되기도 하였으나 여러번의 개축과 보수공사로 인하여 비교적 잘 보존된 상태이다
1291년 아랍의 살라딘은 십자군과 싸워 그들을 이곳 성지에서 몰아내고 성지를 장악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는 다행히도 성묘교회를 파괴하지 않고 소유권을 각 종파에 맡겼으나
대신에 이 교회를 장악했다는 뜻으로 교회로 들어가는 두 개의 문 중에서 하나를 돌로 완전히 막아버렸고
이슬람 통치시대에는 교회문은 굳게 닫혀있었고 열쇠는 자기와 가까운 이슬람 두 가문에 맡겼다
이 때부터 오늘까지 700년동안 성묘교회는 한 개의 문만 사용하고,
그 문의 열쇠는 지금도 이슬람 측이 소유하고 있어서
그들이 교회 문을 열어 주고 닫고 하는 권리를 아직도 지니고 있는 참 어이없는 일이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예수님 무덤 성지가 아주 중요한 그리스도교 성지이나 실제적인 소유자는
열쇠 소유권과 문을 열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는 무슬림들에게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렇한 엄청난 권리를 무슬림들에게 맡겼던 이유는 물론 회교 정부 통치하 이였기에 가능하였으며
성전내의 여러 크리스챤 종파들의 싸움을 피하기 위하여 만든 제도이기도 하다니
그때나 이제나 종파간의 갈등과 다툼은 언제나 끝이 날꼬?.
오스만 터키 제국이 예루살렘을 통치하게 되어 이 거룩한 장소에 대한 소유권을 각 종파에 승인하고
그들이 자기네들이 맡은 구역을 관리하고 있는데 평면도에 각 종파 관활 구역이 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그리스 정교회, 아르메니아 정교회, 로마 카톨릭 교회는 보다 넓고 중요한 장소들을 차지하였고,
뒤늦게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던 시리아 정교회, 이집트 곱틱교회, 에티오피아 정교회는 작은 구역을 관리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들 종파간에 알게 모르게 자기 구역에 대한 세력다툼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기도 하다
교회 정면의 1층에는 아치문 2개가, 2층에는 아치창 2개가 있는데 1층의 아치문 중 오른쪽에 있는 문은
십자군 시대 군주들의 무덤이 있는 지하실로 통하는 문이지만 벽으로 폐쇄되었으며,
왼쪽에 있는 문은 교회를 출입할 때 사용하는 정문이다.
2층 오른쪽 아치창 앞에는 나무 사다리 하나가 외벽에 걸쳐져 있는데, 이 사다리를 치우자는 종파간의 합의가 없었기에
1854년 이래 지금까지 150년 넘도록 그 자리를 지켜 이른바 부동의 사다리(Immovable Ladder)'라 불린다.
교회의 정면을 기준으로 왼쪽에 있는 종탑은 십자군 시절인 1160년에 세워졌는데 1545년에 지진으로 붕괴되었다가
재건하면서 돔 지붕이 사각뿔 지붕으로 바뀌고 높이도 낮아졌다.
살라딘이 예루살렘을 장악했다는 표시로 그 때부터 굳게 닫혀있는 오른쪽 문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순례객과 관광객이 방문하는 곳이 예수님 무덤교회이다<
하루 평균 3만, 한 달 100만, 일년 1200만 순례객이 둘러보는 곳이라 하니
우리가 갔을때도 줄을 길게 서서 둘러 보아야 했는데그런데도 가이드 이 집사님의 말로는
오늘은 한가한 편이라 꽤 순조롭고 빠르게 순례를 하는 편이라고 한다?
사실 제대로 구석 구석 보려면 아무리 적게 잡아도 3~4일은 종일 걸리겠는데
고작 한 두시간안에 둘러보고 나오자니 숟가락 들자 밥 다 먹었으니 놓으라는 격이다
그래도 어쩌라 ? 이렇게라도 볼 수 있음에 감사하고 열심히 자료를 찾아 알아봐야지 ㅠㅠㅠ
복잡한 교회내를 두 시간도 채 안되게 급히 둘러보고 나오느라 사진도 미처 못 찍었고
너무나도 많은 장소와 설명이 필요하지만
내가 본 것 중에 기억나는 것만으로 기억을 더듬어가며 몇가지 올려보았다
아마 성묘교회 10분의 1도 안되는 것이지만 안 본 것보다야 낫겠지 위안하며.....
성묘 교회 내의 성묘수도원은 13세기부터 수도원이 있었으니까 800년 된 수도원이다.
카토릭, 프란시스칸, 정교회, 콥틱 기독교, 아르메니안 등에서 수도사가 파견되어 합동으로 수도하는 곳이다.
30여명 수도사들이 나라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환경에서 모여 하나가 된 세계에서
가장 에큐메니칼한 수도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곳에 한국 수도사 한 분이 일하고 계신단다
2005년에 프란시스칸에서 파견되어 11년째 일하고 계신 김상원 신부님이신데. 세례명은 데오빌로(Theophilo)이시다
아래는 최근에 성묘 수도원을 찾아 데오빌로 수도사를 만나 대화한 강문호 목사님의 글 중에서 조금 옮겨 본다
기독교 영성의 핵심은 봉쇄 수도원을 통하여 흘러 내려왔습니다
수도원은 떠남에서 시작합니다. 떠남의 목적은 하나님 만남입니다.
수도의 출발은 자유로움에서 출발합니다.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수도원은 가난, 성결 그리고 순명입니다.
영성은 고백이 아니라 삶 그 자체입니다. 기도 중에 최고 기도는 찬미입니다. 악기 중에 최고의 악기는 목소리입니다.
기독교에 성인이 없는 것은 수도원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영적 지도자는 물론 우리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의미있게 깊이 생각해야 될 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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