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요르단 성지 순례기

성지순례25. Via Dolorosa(십자가의 길) 1지점~5지점

bonitahuh 2022. 10. 14. 08:53

*Via Dolorosa (십자가의 길.고난의 길).*  

 라틴어의 Via Dolorosa 는 ‘along the way of suffering’ 즉 ‘고통의 길을 따라서’라는 뜻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걸어가신 이 길은 온 인류의 죄악을 그 몸에 담당하심으로 하늘 길을 여셨다.

이 “십자가의 길”은 예수께서 사형언도를 받으신 빌라도 법정에서부터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까지 걸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장사지냈던 무덤까지의 약 800m의 길을 말한다.

 

모두 14지점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1294년 리칼두스 신부에 의해 대략 위치가 정해졌고

그 후 1540년경 프란체스코 수도사들에 의해 지금의 코스가 확정되었다고 한다.

 

1 지점은 사형선고를 받은 곳이며  2 지점에서 9 지점까지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신 길이고,

제 10 지점에서 14 지점까지는 골고다 언덕에 있는 예수님 무덤과 부활하신 터에 지어진 성묘교회 안에 있다

당시 예수께서 걸으셨던 길과는 실제적으로 조금은 다를 수도 있으나 19세기 말 고고학 발굴을 통하여

 일부는 확정된바 있는데  이 십자가의 길을 걷는 순례객들에게 무한한 감동과 의미를 안겨준다.

이 길은 예수께는 고난의 길이요 슬픔과 낙심의 길이었으나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는 생명과 구원과 승리의 길이다.

 

제1지점 :빌라도 법정에서 예수님이 재판을 받은 곳.

제2지점 : 예수님이 가시관을 쓰고 홍포를 입고 희롱당한 곳.

제3지점 :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다 처음 쓰러진 곳.

제4지점 : 예수님이 슬퍼하는 모친 마리아를 만난 곳.

 

제5지점 : 시몬이 예수님 대신 십자가를 진 곳.

제6지점 : 성 베로니카 여인이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준 곳.

제7지점 : 예수님이 두번째로 쓰러진 곳.

제8지점 : 예수님이 슬퍼하는 모친 마리아를 위로한 곳.

제9지점 : 예수님이 세번째로 쓰러진 곳.

제10지점 : 예수님이 옷 벗김을 당한 곳

제11지점 :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힌 곳.

제12지점 :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운명한 곳.

제13지점 : 예수님의 시신을 놓았던 곳.

제14지점 : 예수님이 묻히시고 부활하신 곳 

*제 1지점 : 예수님께서 심문을 받으시고 사형선고를 받으신 곳 " 

대 제사장 가야바는 예수님을 심문한 후 장로들과 의논한 후 결국 예수를 죽이기로 결정하고

사형선고 권한이 있는 로마총독 빌라도에게 예수를 끌고 가서 넘겨준다.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라"(마27:1~2) 

예수를 넘겨받은 빌라도는 자신이 머물고 있는 안토니우스 요새에서 예수님을 심문했으나.

사형에 해당할만한  죄를 찾지 못해 (요19:4) 망설였으나 군중들의 성화에 못이겨 사형선고를 내리고 만다

예수님 당시에 로마 총독부는 가이샤라에 있었으나 당시 총독 빌라도는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 기간에

자주 일어났던 반 로마 시위를 감시하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와 있었다

안토니우스 요새는 헤롯 시대 예루살렘의 북쪽의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의 동북쪽에

 요새를 건축하였는데 로마에 의하여 성전 북편을 감시하던 곳으로 사용되었다.

 

 지금은 안토니우스 요새가 아닌 아랍 초등학교인 알 오마리야(Al.Omariya)라는 초등학교가 세워져 있는데

이 학교의 운동장이 예수님 당시 안토니우스 요새가 있었던 자리고

빌라도가 예수를 재판했던 곳으로' 비아돌로로사'의 출발점이다

금요일 오후에만 개방하므로 들어 가지 못하였는데 지금도 금요일 오후 3시에 프란체스코 수도회 사제들의 주관으로

이 학교 마당에서 십자가 행진이 시작되고 있어 종종 십자가를 메고 비아돌로로사를 걸어가는 행진을 볼 수가 있다한다

 그 안에는 재판관이 앉았던 박석(돌판)과  빌라도가 이 재판과 자기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며

 손을 씻었다는 돌그릇이 남아 있단다.(마태복음 27장 11-14절)

바로 옆에 빌라도 법정 기념교회(선고교회),채찍교회가 세워져 있다.

빌라도 법정 회랑 을 사이에 두고 채찍교회와 선고교회가 마주 보고 있다

비아 돌로로사 제 2 지점: 예수님이 가시관을 쓰고 홍포를 입고 희롱당한 곳.

채찍교회와 선고교회 옆 벽 표지판

채찍질 교회 모습 

현재 제2지점 안에는 두 개의 교회가 있는데 하나는 채찍질 교회(The Franciscan Chapel of the Flagellation)이고

선고 교회는 AD 1903-1904년에 비잔틴 시대의 건물로 재건되었으며

이곳에서부터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를 지시고 걸어가기 시작한 장소이다(요19:16).

채찍교회 내부의 스테인글라스와 가시면류관을 도안한 천장 모습

남쪽 창에는 바라바가 사면받아 기뻐하는 모습이, 가운데는 예수께서 채찍질 당하는 모습이,

북쪽 창에는 빌라도가 손을 씻는 모습이 스테인 그라스에 그려져 있다

채찍교회 정문벽에 부조된 채찍모양

가죽 줄의 끝에 납을 매달아 한번 칠때마다 살점이 파지고 피가 범벅이 된다

예수께서 사형선고를 받고 가시관을 쓰시고 홍포를 입고 십자가를 지시며 채찍에 맞으신 곳으로

카토맄 작은 형제회(프란체스코) 수도원 안에 사형선고를 받은 사형 선고 교회와 채찍질 교회가 마주 하고 있다

채찍질교회는 AD1839년 로마 캐톨릭 소속 교회로 지어졌고, 1929년에 십자군 시대의 건축 양식으로 개조되었다.

선고 교회는 AD 1904년 비잔틴양식으로 건축되었는데 크기는 10m의 정사각형 형태로 지어졌다

빌라도 법정 바로 옆 정원에 채찍교화와 마주보고 있는 빌라도 법정교회 (선고교회) 현판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기 위해 계단을 내려오는 성화인데 이 계단을 가리켜 "거룩한 계단"(Santa Scala)라고 한다

이 계단은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 헬레나에 의해 로마로 옮겨졌으며

현재는 라떼라노 대 성전 옆에 위치한 싼타 스칼라(Santa Scala)성당에 있다

이 싼타 스칼라 성당을 순례할때는 아래 계단부터 시작하여 28 계단을 올라갈때는 무릎을 꿇고 올라가는 전통이 있단다

선고 교회 천장 모습이다

선고교회 안에서 잠시 말씀을 묵상한후 맨 먼저 담임목사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비아돌로로사의 첫 발을 내 디디셨다

선고교회는 빌라도가 예수를 재판하던 자리에 세워졌다는데 지금의 교회는 프란체스코 작은 형제회에서

1903~1904년에 십자군에 의해 세워졌던 자리에 다시 세워졌다.

에케호모 아치(Ecce Homo Arch)와 연결된 에케호모 수도원

채찍질교회에서 나오자 마자 길위에 걸쳐있는 아치형 건물이 보이고 아치와 연결된 교회가 있다

에케호모(Ecce Homo)라는 라틴어로 '보라 이 사람이로다"(요 19:5) 이라는 뜻이며 빌라도가

채찍질과 조롱을 받으시고 나오시는 예수님을 가리켜 말한 (요19:5) 그 곳에다 기념교회가 세워졌다

1855년 예루살렘을 방문한 라티스본 신부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억하게 하는 상징물이었던

에케 호모 아치를 보고 크게 감동받아 그는 1857년에 다시 예루살렘으로 와서 페허로 버려져 있던 북쪽 땅을

시온수녀회의 부지로 구입하고 1868년에 수도원과 교회당을 완공하였다

그후 시온수도회에는 1931~1933년, 1934~1937년 두번에 걸쳐 이곳에서 발굴작업을 하였는데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 사람을 보시오라고 말했던 곳과

빌라도의 재판관석이 그 위에 있었던 돌 판으로 깔린 로마식 도로인 '리토스 트로토스'(Lithos Trotos) 아람어로는

가바다(Gabatha 요 19:13))를 발굴하여 안토니오 요새에 있었던 빌라도의 법정자리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리토스 트로토스'(Lithos Trotos) 라는 말은 "돌 판" 이라는 뜻으로 당시 아람어로는 "가바다" 라고 하는

로마시대에 도로나 광장을 조성하기 위해 바닥에 깔았던 큰 돌 판을 말한다

현재 이 돌판은 시온 수녀원 지하에 일부가 보존되어 있다는데 보지는 못하였다

이 교회는 시온 수녀원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안토니아 요새의 북쪽 부분에 해당되는 곳이다

2지점에서 3지점으로 걸어가는 십자가의 길 체험하시는 목사님,

 제 3지점:십자가를 지고가다 첫번째 쓰러지신 곳   

3지점에 세워진 기념교회로 1856년에 아르메니안 카톨릭에서 처음 건축되었다가

1947년~1948년에 풀란드 군대의 도움으로 다시 수리되었다

현재는 실제적으로 폴란드 카토릭 소속으로 제 2성전 시대의 유물이 전시된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예수님이 처음 쓰러지신 곳에 도달하여 교회 안 성화앞에서 무릎꿇고 기도하시는 목사님

제 3 지점 부터 신 목사님께서 십자가를 이어 받아 지고 비아돌로로사를 걸으신다

4지점: 예수님이 슬퍼하는 모친 마리아를 만난 곳.

 

4지점은 3 지점과 건물이 맛닿아 있는 아주 가까운 거리이다

이 곳에 아르메니안 교회(Armenian Church of Our Lady of the Spasm)가 세워져 있다

문 위에 부조되어 조각된 예수께서 슬퍼하는 마리아를 만나는 조각상은

폴란드 작가 T. Zielinski 의 작품이다

복음서에는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다 그 모친 마리아를 만난 기록이 없지만 전승에 의하여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제 5 지점: 구레네 시몬이 예수님 대신 십자가를 진 곳

"마침 알렉산도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마 15:21)

비아돌로로사 길의 모퉁이 길을 돌아서게 되면 언덕길을 올라가는 계단이 시작되는 곳에 있다

이곳에는 예수님 대신 십자가를 지고 간 시몬을 기념하여 1895년에 세워진프란치스코 카톨릭 교회가 있다

5지점 기념교회 정문 오른쪽 벽에 새겨진 예수님 손자국이라는데

예수께서 힘드셔서 벽에 손을 대셨다는 손자국위에 남편도 손을 대본다

우리 주님과 하이파이!!!

교회 내부에 조각되어 있는 구레네 시몬이 대신 십자가를 지는 모습

십자가의 길은 경건하다거나 거룩한 모습이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폭이 2m 정도의 비좁은 오르락 내리락하는 골목길에 조잡한 상점들과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데

그러함에도 우리 주님께서 세상속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고난의 길을 걸었음을 생각하니 오히려 더욱 은혜스럽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닌 길인지 예수님 당시에도 있었다는 돌길이 닳고;닳아 자칫 미끄러지기가 쉽상이다.

우리 일행은 나지막히" 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질때" 찬송을 부르며 십자가 뒤를 따라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