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요르단 성지 순례기

성지순례 23. 예루살렘성과 성문들

bonitahuh 2022. 10. 14. 08:40

오늘부터는 본격적인  예루살렘 투어가 시작된다

예루살렘은 터 또는 기초라는 뜻의 ‘예루’와 평강이라는 뜻인 ‘살렘’을 합성하여 평강의 터 또는 평화의 도시라는 뜻이다.

성경에 예루살렘은 살렘(창 14:18, ), 예루살렘(수 10:1), 여부스(수 18:28), 시온산성 또는 다윗 성(삼하 5:7),

아리엘(사 29:1), 여호와의 성읍(사 60:14), 모리아 산(대하 3:1) 등 다양한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예루살렘은 사해에서 서쪽으로 약 24㎞, 지중해안에서 동쪽으로 약 56㎞ 떨어진 이스라엘 중심부에 위치하며

유대광야 동편 가장자리의 해발 780m로 이 일대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다

  동쪽에는 기드론 골짜기( 삼하 15:23, 요 18:1),서쪽과 남쪽 방향으로는 힌놈의 골짜기(수 15:8 )가 있고

북쪽은 중앙산맥으로 이어져 비교적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어 천혜의 요새를 이루고 있다.

예루살렘은 3쳔년의 역사를 간직한채 고대로부터 현재까지 역사의 중심에서 살아 숨쉬는 이스라엘의 수도이며

황금의 도시, 영원한 도시, 평화의 도시의 상징이다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시125;:2) 

예루살렘 시온산 기드론 골짜기 건너편은 회교도 무덤이고, 앞쪽은 유대인 무덤이다.

지도의 파란 부분이 현재의 구 예루살렘 성이다

예루살렘의 면적은 126 km² 이며 그 중에서 ‘구 예루살렘’(Old City)은 불과 0.9 km² 이다

예루살렘의 전체 인구는 2015년 기준 90만명정도이다

그러니까 서울의 5분의 1 면적에다 인구는 10분의 1도  채 안되며 Old City는 여의도의 6분의 1 정도의 면적이다

구 예루살렘이야말로 예루살렘 전체에서 그 핵심이 되는 부분으로 오랜 역사의 묵은 때가 겹겹이 쌓여 있는 곳이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에 예루살렘 지역을 수 차례 침공했지만 여부스족이 견고하게 수호하였다

주전 1000년경에 비로소 다윗이 여부스족을 몰아내고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다윗성이라 칭하고 수도로 삼았고(삼하 5:6~10)

또한 기럇여아림에 있던 언약궤를 성안으로 옮겨와 (삼하 6:1~23) 정치와 종교적인 중심지로 만들었다.

다윗에 의해 다윗 성(City of David)이라 명명한 후 통일왕국의 수도로 삼은 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의 중심지가 되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다윗 성 북쪽 모리아 산에 성전을 건축(대하 3:1)하여 언약궤를 성전 안에 보관하였다. 

솔로몬 이후 이스라엘은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로 갈라지고 예루살렘은 남 유다의 수도가 되었다.

BC 586년 바벨론에 의해 남 유다가 완전히 멸망당한 후 예루살렘은 여러차례 주인이 바뀌면서

테러와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며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전쟁과 수난을 겪은 도시가 되어 왔다 >

이러한 예루살렘은 1000년간  배타적인 유대교 지역이었고.

400년간은 그리스도교 지역이었으며 1300년간은 이슬람 지역이었다.

 미국의 유대교 잡지인 '모멘트 메거진'(Moment Magazine, 2008년 6월호)에 따르면,

"예루살렘은 2차례 완전히 파괴되었고, 23차례 포위되었으며, 52차례의 공격을 받았으며

그리고 44차례 점령과 탈환을 반복했다"고  말하고 있다

2000 여년 이상 나라없이 지내던 이스라엘이 드디어 1948년 건국을 선포하였을때

동 예루살렘은 요르단이 서 예루살렘은 이스라엘령으로 분리되었다

1967년 6월 제 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하므로 동 . 서 예루살렘 전체를 점령하였다

드디어 1980년 7월30일 이스라엘 국회는 예루살렘 전체를 "분리할 수 없는 이스라엘의 영원한 수도"로 규정하여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에 관한 기본법'을 통과시켰지만 국제적인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1980년8월 20일에 채택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478호 결의(찬성 14, 반대 0, 기권 1(미국))에서

이스라엘의 주장을 국제법 위반으로 간주하며 모든 회원국들의 외교관들은 예루살렘에서 철수할 것을 촉구하였다.

이 결의에 따라 이스라엘에 있는 각국의 대사관과 대표부는 예루살렘 대신 텔아비브에 있으며

텔아비브가 사실상 현재 이스라엘의 행정수도 역활을 대신하고 있다

예수님 당시의 예루살렘 성이다

현재 예루살렘의 올드시티를 감싸고 있는 예루살렘의 성은 예수님 당시의성과는 다르다.

예루살렘 성은 3천 년 전에 다윗이 세운 성에서부터 솔로몬성, 그리고 제1성전과 제2성전의 모습을 지나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술레이만이 재건한 성의 모습까지 여러 차례 그 위치와 크기가 변화되어 온 것이다.

 

 

 

현재 구 예루살렘의 지도이며 성 밖의 주변도 그려져 있다

동 예루살렘에 속한 Old City는 성지와 고적들이 많으며 신시가지에는 정부청사를 비롯한

모든 기관들이 현대화되어 구 시가지와 묘한 조화를 이룬다

특히 예루살렘의 모든 건축물은 연한 베이색만 사용하도록 규정되어 있어 노란빛을 띄고 있는 석회암에서

반사되는 아름다움은 이 도시를 황금의 도시(The Golden City)로 불리게 한다

 

에루살렘의 Old City를 감싸고 있는 성벽과 성문은 오스만 터어기 제국의 슐레이만 대제(Suleiman)가

AD1537~1542년 사이에 수축하였고 그 당시의 성벽과 성문이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오고 있다.

성벽은 두께 평균 3m정도에 높이 5~17m, 둘레길이 4.018m이다

성벽 상부에 34개의 망대탑과 곳곳에 현대전에 필요한 총 안구와 같은 형태의 방어에 유리하도록 축조되었다.

성벽 내부 면적은 0.9㎢로서 구 시가지는 4구역으로 구분되어 있다.

성벽 내부의 북쪽은 기독교인 지역, 북 동쪽은 모슬렘(아랍)인 지역, 서 남쪽은 아르메니아인 지역,

동남쪽은 유대인 지역으로 구분되어 각각 거주하고 있으며 예루살렘 성은 전 인류의 절반인 그들 모두의 성지이다.

유대인들에게는 옛날의 영광과 미래의 희망의 상징이며

기독교인들에게는 예수님의 마지막 사역과 죽음과 부활이 있었던 거룩한 도시이다

또한 이스람교도들에게는 이곳이 선지자 모하매드가 승천한 곳이라 믿고 그들의 성전이 있는 거룩한 곳이다

성경에 기록된 다윗성과 시온성은 현재의 성곽 밖에 위치하고 있다.

성벽은 총 8개의 성문이 있는데 동쪽에는,1. 황금문 Golden Gate( 미문Beatiful Gate 회개의문,자비의 문)

2.사자문 Lion Gate (양문(Sheep Gate),여호사밧문,마리아문).

서쪽에는 3. 욥바문 Jaffa Gate, (다윗의문,아브라함의문,헤브론문) . 4. 새문 New Gate

남쪽에는 5. 시온문 Zion Gate ( 예언자 다윗의문)  6.분문Dung Gate(오물문.)

북쪽에는 7. 헤롯문(초소의 문,꽃 문)  8. 다메섹문 Damascus Gate,(세겜문).

1.황금문Golden Gate ( 미문Beatiful Gate 회개의문,자비의 문,수산문)

위 사진은 성 밖에서 본 황금문이고 아래 사진은 성안에서 본 황금 문이다

성벽 동쪽 한가운데 있는 기드론 골짜기와 감람산을 마주 보고 있다

아치형 쌍문을 돌로 막아 놓아 성체같이 보이는 문이 유명한 예루살렘으로 통하는 황금문이다.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운 '미문'(행3:2)이라고도 부르는 이 문은 가장 아름답게 만들어 졌다.

황금문은 두개의 문이 나란히 있는데 하나는 '자비의 문'리며 하나는 회개의 문으로 불리며

제 2성전 시절에는 '수산문'(Shushan Gate)이라 불렀는데 예루살렘 성전 지성소에서 

가장 가까운 외부 출입문으로 제사장들이 감람산에서 성안으로 출입하던 문이다.

예수께서 새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던 문도 이 문이다 

 

십자군 시대에는 종려주일과 가을에 있는 '십자가의 날'(The holy Cross Day)에 이 성문을 열었다고 한다. .

'십자가의 날'은 629년 9월 중순에 비잔틴시대 헤라크리우스왕이 예수님이 달려 돌아가신 것으로 믿어지는

십자가를 콘스탄니노풀로 옮긴 날을 말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이 문이 닫힌 근거로 겔44:1~2 "그가 나를 데리고 성소 동향한 바깥 문에 돌아오시니 그 문이 닫히었더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 문은 닫고 다시 열지 못할찌니 아무 사람도 그리로 들어오지 못할 것은 이스라엘 하나님 나 여호와가 그리로 들어 왔음이라 그러므로 닫아 둘찌니라”(겔44:1~2)을 들고 있다.

이 문은 예수님과 성도들이 마지막 날에 종려가지를 흔들려 예루살렘으로 입성할 문이라 하였고,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입성할 문이라 믿고 있다.

황금문은 로마 호아제 유스티아누스 1세(justonian1.AD 483~565)통치기간에 세워졌으나

전쟁으로 파괴되었다가 우마이야조가 예루살렘을 통치하던 7세기 경에 다시 세웠다

1541년 오스만 제국의 슐탄 슐레이만 1세는 메시아의 예루살렘 입성을 염원하는 유대인들을 억합하는

정책의 일환으로 유대인의 메시아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을 봉쇄해버렸고

그 문 앞에서는 무술림들의 무덤들로 길을 막고 있다

또한 최후의 심판날에 이 황금 문에서 부활할 것이라는 전승때문에 이 근처에 묻히기를 원하는 사람들로

그 근방은 수 많은 무덤인 돌로 만든 석관들을 볼 수 있다

2,사자문(Lion Gate) 또는 스데반 문, 양 문(Sheep Gate). 여호사밧 문이라 부른다

1540년 축조된 이 문은 예루살렘성 동벽 북쪽에 있으며 모슬렘(아랍) 구역으로 통하는 문이다.

성 밖에서는 기드론 골짜기를 건너 겟세마네동산으로 가는 길이 연결되어 있고 베다니 여리고,요단강으로 갈 수 있다

성문을 들어서면 성 안나교회와 베데스다 연못이 가까이 있다

기독교인들은 해마다 종려주일에는 벳바게에서 종려나무 가지를 꺽어 손에 들고 이 문으로 들어 온다.

이 문이 스데반문으로 불리는 것은 스데반이 이곳에서 순교했다는 전승에 근거한 것이며(행7:54~60)

유대인들이 사자문이라고 부르는 것은 문 양쪽에 사자 조각이 부조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매 주 금요일에는 이 문 근처에서 양을 팔고 사는 시장이 열리고 제물로 사용하는 양들이 출입하는 문이라고 하여

오래전 부터 '양문'(Sheep Gate느 3:1)이라고도 불렀다

기독교인들은 해마다 종려주일에는 벳바게에서 종려나무 가지를 꺽어 손에 들고 이 문으로 들어온다

6일 중동전쟁때 이스라엘 군이 이 문을 통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점령하였다

3.욥바 문(Jaffa Gate 또는 (다윗의문,아브라함의문,헤브론문) .

고대부터 지중해 욥바 항구로 이어지는 교역로가 이곳에서 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욥바 문이라고 하며

헤브론 문이라고도 하고 다윗의 망대가 옆에 있었기 때문에 다윗문이라고 하며 아브라함의 문이락도 부른다

예루살렘 구도시를 방문하기 위해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성문이자 유일하게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욥바 문의 정면에는 슐레이만 대제가  1538년에 이 문을 세웠다 라고 아랍어로 쓰여 있으며

그 밑에는 최근에 기록된 된것으로 1970년에 보수를 마치고 나서

히브리어와 아랍어로 "예루살렘이 보수됨"(느4:7)이라고 쓰여있다

1898년 까지는 욥바 문과 다윗 망대사이에 성벽이 있었으나 독일황제 빌헬름 2세가 이곳을 방문하여 마차를 타고

들어 오게 하느라 성벽을 헐고 길을 만들었기 때문에 현재 도로처럼 자동차가 드나들 수 있는 넓은 길이 생겼다

1917년 영국 알렌비( Edmund Allenby)장군이 영국군의 선두에서 이 욥바 문을 들어올때는

예루살렘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말에서 내려 걸어 들어왔다

욥바 문을 들어 서면 오른쪽은 아르메니아 구역, 왼쪽은 기독교 구역이다

문안으로 정면에 christian Information Center 가 있고 왼쪽으로는 여행자들을 위한 안내센터가 있다

자파 문 의 바로 오른쪽 옆에는 에루살렘 성의 수비를 위한 요새가 있는데 "다윗의 망대"(Tower of Davud)라고 부른다

이 망대는 주전 20년에 헤롯왕이 예루살렘 서쪽 방어를 위해 지은 망대이다

현재 우리가 보는 것은 오스만 터키 술탄 슐레이만 대제때 재건된 것이다

탑 내부에는 고고학 박물관과 전망대가 있다는 설명만 듣고 보지 못하고 가는 곳이 너무 많다ㅎㅎㅎ

자파 문은 1948년 1차 중동전쟁 당시에는 요르단에  의하여 통행이 통제되었으나

1967년 6일 전쟁때이스라엘이 예루살렘 전 지역을 점령하면서 통행이 재개 되었다

자파 문은 1981년 부터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4. 새문 New Gate) 또는 이삭문

이 문은 예루살렘 성벽 북서쪽 모퉁이에 위치하며, 기독교 구역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다

성과 성밖의 기독교인들이 드나 들 수 있도록 1899년에 개통되었다.

허나 성경에는 그 전에도 이 문이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바룩이 여호와의 성전 위뜰 곧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새 문 어귀 곁에 있는...."(렘 36:10)

1887년에 오스만제국의 술탄 압둘 하마드2세(Abdul Hammid11)의 허락으로 만들었으며

하마드2세의 통치기간에는 하마드의 문(The Gate of Hammid) 라고도 불렀다

새 문 서쪽 면에는 다윗의 육각형 별 안에 45도 기울어진 솔로몬 문양의 별이 부조되어 있다

독일 황제 윌리엄 2세(William 11) 가 1898년 예루살렘을 방문하였을때 이 새문을 통해 기독교지구를 방문하였다

1948년 1차 중동전쟁 당시 요르단이 동 예루살렘을 점령했을때 이 문의 출입이 통제되었으나

1967년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동 예루살렘을 점령한 후로는 새 문의 통행이 다시 시작되었다

5. 시온문 Zion Gate ( 예언자 다윗의문)

이 문은 예루살렘의 남쪽 성벽 중에서도 서쪽에 있는 시온산을 향한 문으로 유대인구역으로 통한다.

이 문을 시온문이라고 한 것은 이 문이 시온산으로 통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온산에 있는 다윗왕의 무덤을 갈 때에는 이 문을 통해서 간다.

1541년 오스만 터키의 슐탄 슐레이만에 의해 건축되었6일 전쟁 후 1968년에 보수되었다.

문의 바깥쪽에서 보면 많은 총알 자국이 있는데 이는 1948년 독립전쟁때 치열한 전투가 있었떤 총탄 흔적이다.

시온문은 1968년 6일 전쟁 후 회복되어 보수되었다.

입구 위쪽에 이 문을 세운 슐레이만 대제를 기념하는 터어키 문구가 있다.

문 위에는 이 문을 세운 오스만 터키의 슐레이만 대제를 기념하는 터키어 문구가 새겨져 있다.   

시온문은 욥바 문과 다메섹 문들과 함께 원래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다

적들이 침략했을때 방어하기 좋도록 "ㄴ"자형으로 만들어졌다

6.분문Dung Gate(오물문.)

분문은 예루살렘 성전산 남동쪽 모둩이에 위치하며 예루살렘 성문들 가운데

가장 낮은 곳에 있고 유대지구로 통하는 유일한 문이다

고대에 성 안의 분뇨와 번제단에서 제사를 드리고 난 후 쓰레기를

기드론 골짜기로 내버리기 위해 만들었던 문이므로 오물 문이라고 부른다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는  실로암 연못까지 이어지는 계단이 있어서 '실로암 문'이라고도 불렀다

성경에는 '분문'으로(느3:14) '두담 샛문'(렘39:4)으로 언급되어 있다

문 안쪽으로는 예루살렘 서쪽 성벽으로 남아있는 통곡의 벽이 보인다

7. 헤롯문 Herod's Gate ( 초소의 문,꽃 문)

헤로데 안티파스의 궁전이 이 성문 근처에 있었다고 하여 이렇게 불린다.

유다인들은  성문 중앙에 장식된 꽃 무늬때문에 히브리어로 '사아르 헤페라힘(꽃들로 장식된 성문)'

즉 꽃문이라 부르고 회교도들은 '바브 에즈 사히라(초소의 문 Bab al Shirah)라고 부르고 있다.

헤롯문은 에루살렘 성벽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1539년 슐레이만 대제가 성벽을 개축할 당시에 세웠다

이 문은 본래는 샛문으로 세워져서 사람들과 마구를 푼 짐승달만 성안으로 들어가도록 하였다

1099년 예루살렘에 입성한 십자군이 헤롯문 근처에 있는 성벽을 파괴하여 들어갔다고 전해진다

현재는 아랍 재래시장으로 연결되는 길목에 있어 아랍인들이많이 출입하고 있으며 성문 안쪽으로는

좁다란 골목에 아랍상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8. 다메섹문 Damascus Gate,(세겜문,나블루스문).

북쪽으로 난 다메섹 문으로 동쪽 헤롯문과 서쪽 새문 사이에 있는 가장 크고 아름다운 문이다

이 문으로 해서 계속 북쪽으로 가면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스와 통한다 하여 영어식으로 붙여진 이름이 다메섹 문이다

유대인들은 Shachem Gate 라 부르는데 세겜에서 예루살렘에 이를때 들어가는 문이기 때문이며

아랍인들은 Nablus Gate라 부르는데 세겜의 아랍식 이름이 나블루스 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름으로는 Bab-el- Gate(Gate of Pillar) 라고도 부르기도 하는데

로마 비잔틴 시대에 이 곳에 로마식 거리표식을 한 기둥이 이곳에 세워졌기 때문에

그것을 보고 기둥이 있는 성문이라는데서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이 다메섹문은 헤롯대왕이 세웠던 성문과 로마의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세웠던 로마의 도시 성문의 페허위에

AD 1541년 오토만 제국의 술레이만 대제가 예루살렘 성벽을 쌓은후 건설했다

문 위에는 1536년~1538년 사이에 이 문을 복원한 슐레이만 대제(1520~1566)를 기념하는 문구가 아랍어로 쓰여져 있다

다른 하나는 시온문이 서쪽으로 좀 옮겨졌지만 시온문으로 통했다.

이 문은 적의 갑작스런 공격을 방지하기 위해서 이중각을 이루고 있고 원래는 쇠가 덮여있는

나무로 된 삼중의 문이었으나 현재는 한 쌍의 문만 남아있고. 문을 지키던 군인들의 방 두개는 가게로 사용된다.

성문 안으로 들어가면 과일가게, 옷가게 , 환전상, 잡화가게등이 즐비하게 늘어선 시장 골목으로 들어선다

여기서 약 20m 정도 가면 두 갈래 길이 나오는데 왼쪽은 비앋로로로사 제 3지점과 4지점을 만나고

조금 더 내려가면 통곡의 벽으로 갈수 있는 길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