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리고는 기원전 8000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대도시이다
예루살렘 동편 35km 사해 북쪽으로 8km에 떨어진 요단계곡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해발 -258m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도시다
예루살렘은 해발 고도 800 여m이고, 여리고는 해발-258m이라 거리는 불과 35km이지만
두 도시의 해발고도 차이는 거의 1000m가 차이가 난다
성경에서 항상 여리고로 내려간다는 표현을 쓰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는 표현을 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리고는 이런 요단 계곡 주변의 황량한 사막 한 가운데 펼쳐진 이른바 ‘녹색 카펫’과 같은 곳이다
토질은 기름졌으며 이런 토질 덕분에 오렌지, 바나나, 대추야자 등 열대 과일이 풍성했으며
특히 종려나무가 많아 종려나무 성읍((신34:3, 삿3:13).라고 불리워졌다
이렇게 비옥한 토질로 인하여 기원전 7000~10,000년 경부터 사람이 살면서 문명의 중심지로 형성 되었다
현재 여리고는 구약의 여리고, 신약시대의 여리고, 현재의 소도시 이렇게 3 개로 되어 있다
거리적으로는 불과 1.5km정도 반경이라 우리도 이 지역들은 걸어서 갔다
이 지역들은 1948~1949 년의 중동전쟁 이후 요르단 소유였으나
1967년 6일 전쟁으로 이스라엘이 점령했다가 팔레스타인 자치협정에 따라
1994년 5월 이후 팔레스타인 자치지구로 넘어갔다
여리고에 관한 성경말씀은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정복하는 말씀(수6:1~21)
무너진 여리고 성을 재건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선언(수6:26)
분열왕국 시대에 히엘이라는 사람이 그 무너진 터 위에 성을 쌓다가 맏아들과 막내아들을 잃는다(왕상 16:34)
가나안으로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이 땅을 분배받을때 여리고는 베냐민 지파에게 주어졌다(수18:21)
다윗이 암몬왕이 죽었을때 조문단을 보냈는데 조문단이 수염과 옷을 잘리는 수모를 당하고 돌아오자
다윗은 여리고에서 수염이 자랄때까지 머물게 한다(삼하 10:1~5)
뿐만아니라 여리고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거주하던 곳이며(왕하 2:5)
선지자 엘리야와 엘리사가 방문한적이 있고(왕히 2:4~5)
여리고 근처 요단강에서 엘리야는 승천하였고(왕하 2:11) 엘리사는 맑은 물이 솟게 하였다(왕하 2:19~22)
바벨론이 침공하였을때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아가 여리고에서 잡혀 죽임을 당한다(왕하 25:1~7)
또한 여리고에는 에수께서 시험당하신 시험산이 있으며 소경 바디메오를 고치신 곳이기도 하다(막10:46~52)
세리장 삭개오를 만나셨고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의 배경이기도 하다(눅10:30~37)
구약시대의 여리고는 텔 아스술탄(Tel as-Sultan)으로 지금의 여리고에서 1.5km떨어진곳에 22m높이 언덕위에 있다
여리고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임을 말해 주는 이곳은 길이 350m, 폭 150m의 성곽도시였다.
이런 작은 성이었지만 크기에 비해 여리고는 지정학적으로 곡창 지대로 들어가는 첫 관문이며,
교통의 요지이자 각종 과실수(특히 종려나무)가 우거진 오아시스를 지닌 요새였으므로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점령해야 할 첫 성읍이었다
무너진 여리고 성의 첫 발굴은 1908년 오스트리아의 셀린 박사에 의해 시작됐으며
1930-1936년에 영국의 고고학자 죤 카스팅(John Garstang)이,
1952-1958년에는 영국의 여류 고고학자 캐더린 캐년(Kathleen kenyon)이 맡았다.
그 결과 신석기 시대에 속하는 성과 성벽, 그리고 둥근 망대(Round Tower)를 발굴하였다.
즉 주전 7천년 경에 이미 성을 쌓고 도시생활을 시작하였다는 유물인 것이다.
100 여년 동안에 걸친 유적 발굴에 관한 보고서를 분석한 내용은 이렇다
여리고성은 외벽과 내벽 등 두겹으로 돼 있으며 외벽은 5m 정도 높이의 기초 성벽 위에
두께 2m,높이 7m의 진흙 벽돌 벽으로 세워졌다.
내벽은 지상으로부터 높이가 14m 정도 되는 둑 위에 다시 높이 솟아오른 내 성벽의 구조로 설계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구조를 지닌 이중 성벽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철옹성 같았던 여리고 성은 어떻게 무너졌을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여리고 성 공격방법을 직접 브리핑해 주셨는데 그것은 성 주위를 돌라는 것이였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루 한 차례씩 엿새 동안 성벽을 돌고 칠일째 되는 날에는 성을 일곱 바퀴 돌며
제사장들에게 나팔을 불고 고함을 지르라는 독특한 전술이었다(수 6:3∼5).
이런 전술은 성경를 빼놓고는 인류의 전쟁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말도 안되는 전술로
한 마디로 어처구니 없이 웃기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브리핑 해 주신대로 했더니 놀랍게도 그 견고한 성벽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이런 황당한 이야기를 어떻게 믿어야 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리고 성은 진동에 의한 ‘공명’과 ‘지진’에 의해 무너졌다는 것이 당시 발굴에 참여했던
전문가와 창조과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공명의 위력은 실로 상상을 초월한다
공명이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체는 저마다 고유한 진동수를 갖고 있는데.
이 진동수가 외부에서 가해지는 진동수와 일치하게 되면 진폭이 걷잡을 수 없이 증가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 현상이 반복되면 아무리 강한 물체라해도 파괴될 수밖에 없는 위력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1940년 1월7일 미국 워싱톤 타코마 해협에 태풍에도 견딜 수 있는 신공법으로 건설된 타코마교(현수교)가
산들바람에 무너졌는데. 밝혀진 원인은 타코마교는 현수교였던 만큼 바람이 불때마다 약간의 진동이 생겼는데
이 진동이 다리 자체가 지니고 있던 진동수와 일치하여 공명현상으로 인하여 맥없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또한 1831년 영국 캘버리 부대가 멘체스터 근교 브로스턴교 위에서 행진할때 부대원의 행진 박자가
다리의 고유 진동수와 일치해 붕괴된 것 역시 공명에 의한 사고로 기록되어 있다.
최근에는 이런 공명현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첨단 설계로 건설을 하기 때문에 더 이상의 사고는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 생각해 볼때 이스라엘 백성의 행군이나 고함소리나 나팔소리가 여리고성의 진동수와 일치하여
일어난 것으로 혹은 지진등으로 일어난 것으로 볼수 있다는 견해이다
여리고 성이 무너진 것에 대한 과학적 분석은 ‘공명과 지진’으로 압축할 수 있으나
하나님의 방법은 ‘성벽돌기’라는 지극히 단순한 것이었다
결국 하나님은, 하나님의 음성에 귀기울이는 이스라엘 백성들, 그들의 믿음을 받으시고
하나님의 능력과 자연적 현상을 이용하셔서 그 성을 무너뜨린 것이다
여리고가 나팔소리에 무너졌는지 지진으로 무너졌는지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께서만 알 수 있는 사건이지만,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하셨다' 라는 사실이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돌보셨다는 것이다
고대 여리고 성벽은 그 두께가 2m 이었으며 사방을 둘러싸고 있었다
돌로 쌓은 망대의 높이는 9m 정도였고 직경이 8m 가량의 둥근 모양의 돌탑이 있었다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은 자연석을 쌓아 올린 둥근 탑으로 이는 약 주전 70세기경의 것이다.
주거지와 무덤, 성벽 등이 아직 남아 있고 훨씬 이후의 유물로는 그릇, 항아리, 도자기 등이 있다
그러나 이런 유물들 외에 발굴팀을 놀라게 한 것은 정작 따로 있었다.
발굴팀이 1m 정도 땅을 파고들어 갔을 때 발견한 것으로 불에 탄 곡식 항아리들의 재와 흔적들이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여리고성에 이르렀을 때는 추수가 거의 끝난 시기였다(수 3:15).
이 때문에 추수한 곡식이 항아리에 가득 담겨 있었다는 분석이다.
그렇다면 불에 탄 흔적에 대한 성서의 해답은 무엇일까?
“무리가 불로 성읍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사르고…”(수 6:24)
또한 발굴팀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여리고성 북방 외벽에는 집들이 벽에 붙여져 지어졌는데
오직 한 부분만 무너지지 않은 것이 확인되었는데 이에 대한 해답 역시 성서가 던져줬다.
라합의 집이 외성벽에 붙어 지어졌으며 여리고 정복시 라합의 가족은
그 집안에서 살아남았다고 기록하고 있다(수 6:22,25).
여리고성에 올라보니 종려나무 도시라고 불리울 만한 풍요로운 여리고시의 모습이 보인다
엣 여리고에서 유적지를 올라가기전에 시험산 (Temptation Mount) 팻말이 붙어 있다
십자군들은 이 산을 과란타나( Quarantana) 산이라고 불렀는데 그 뜻은 사십(40)의 산이라는 뜻이다
예수께서 40일간 금식하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산이라는 뜻으로 아마 사십의 산이라 했으리라.
해발 300m에 평평한 모양을 하고 있으며 3면은 절벽으로 되어 있다
우리 일행은 여리고 유적지 정상에서 바라보기만 하고 올라가지는 못했다
시험산 푯말이 붙은 길건너 앞 작은 허름한 이층집 위에 한글로 시험산 기도원이란 간판이 붙어 있는걸 보고
하여간 한국 사람 극성은 못말려하고 피식 웃음이 나온다
분명히 사진을 찍은거 같은데 찾아도 이 사진이 없네?
산 중턱에 있는 수도원은 여리고 시가지와 멀리 요르단 게곡을 한눈에 내려다 볼수 있다
이곳은 유대광야가 시작되는 곳으로 1099년 십자군에 의해 수복된후 2개의 교회가 세워졌는데
현재는 그리스 정교회에서 1874년에 부지를 구입하여 1875년에 예수께서 40일동안 금식하며 앉아 계셨다는
동굴의 바위위에 건축된 수도원 하나만 남아 있다
현재 3명의 그리스 정교회 소속 성직자가 살면서 관리도 하고 수도원 생활을 하고 있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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