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논'이라는 뜻은 포효한다(rushing stream)는 뜻으로 깊고 많은 골짜기들이 있다는 의미이다
암만에서 왕의 대로를 따라 남쪽으로 84km 내려가면 깊은 골짜기를 만나는데 그곳이 바로 아르논이다.
아르논 골짜기는 현재 마다바 지방과 케락의 경계가 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성경에는 '아르논 골짜기'(민21:14, 신2:24, 수13"9), 또는 '아르논 강',(민21:3, 삿11:6)
“아르논 나루”(사 16:2)로 기록되어 있다
지금 이곳의 명칭은 이 지역이 아랍에 정복당한 후부터 '엘 무집'또는 '와디 무집'으로 부르기도 한단다.
아르논 강은 요르단 북쪽 고원지대로부터 깊은 협곡을 통하여 사해로 흘러 들어가는 강 줄기를 이루며,
아르논 골짜기는 바로 그 강이 흐르는 골짜기 또는 그 강의 지류가 있는 와디이다
(*Wadi – 평소에는 물이 없다가 우기에 물이 급하게 흐르며 홍수가 나기도 하는 하천)
건기에는 물이 말라 협곡을 이루기 때문에 아르논 골짜기라고 하고
우기에는 비가 와서 물이 흐르기 때문에 아르논강이라고 불리기도 한단다.
지금은 물이 부족한 요르단의 사정상 댐으로 막아놓아 더 이상 흐르는 아르논 강은 볼 수 없으나
호수처럼 된 댐이 보이며 아르논 강은 물속이 훤히 보일정도로 맑다
옆에 낭떠러지를 끼고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거의 9km를 내려가면 약 10년전에 현대식으로 지은 댐이 나온다
아르논 골짜기는 광대하고 아름다운 가장 험난한 골짜기로 사해로 들어오면서 절벽과 협곡을 이루고 있어 .
중동의 그랜드 캐년이라고도 한다는데 솔직히 그랜드 캐년 정도는 아닌데? ㅎㅎㅎㅎㅎ
당시 아모리 왕 시혼은 북쪽 위쪽으로는 얍복 강 부터
아래쪽 남쪽으로는 아르논 강에 이르기까지 영토를 통치하고 있었다(민21:24)
이곳은 천연적인 요새로 모압과 아모리 지역을 구분하는 경계선이 되었다. (민 21:13)
출애굽 여정에서 이스라엘은 대적하는 시혼의 군대들을 물리치고
이 땅을 차지했으며 그 결과 아르논 골짜기는
요단 동편에 거주하는 이스라엘의 남쪽 경계선이 되었고(신3:8 ) 르우벤 지파의 영역의 경계가 되었다(수13:16)
사사 시대에 암몬 족속의 왕은 그 땅을 차지하려고 시도했다가,
사사 입다가 이끄는 이스라엘에게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삿 11:12-33).
하지만 아람 왕 하사엘(Hazael)은 요단강 동쪽 아르논 골짜기에서 북쪽 바산까지
이스라엘 왕 예후를 공격했다(왕하 10:33).
선지자 이사야는 모압에 대한 심판을 예언하면서 “모압의 딸들은 아르논 나루에서 떠다니는 새” 같다고
말했으며(사 16:2), 예레미야는 아르논을 언급하며 모압의 멸망을 예언했다(렘 48:20)
이 지역은 통일왕국에서 분열 왕국 시대에 이르기 까지 이스라엘의 영토하에 놓여 있었으며
아합왕 이후에 모압은 아르논 이북을 다시 차지한다.
모압 왕 발락이 가나안으로 승승장구하며 행진하는 이스라엘이 두려워 발람을 불러 저주하게 했는데
발락이 이곳에 까지 와서 발람을 영접했다고 한다
최근 요르단 지역 데이르 알라에서 1967년에 비문이 발굴되었는데 그 비문에는 '브올의 아들 발람'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 비문으로 발람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입성할 당시 요단 동편에서 활동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발람의 가는 길을 나귀가 막아서고 저주대신 이스라엘을 세번이나 축복하고 만다(민22장~24장).
아르논 계곡은 폭이 4~8km, 깊이 400~1000m, 길이 18km의 대협곡이다.
모압 평지에서 바라보면, 아르논 계곡 양 옆으로 나무하나 없는 민둥산이
벌거벗은 몸으로 울퉁불퉁한 근육을 자랑하는 것 같다.
그 옛날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약속의 땅을 향하여 험난한 이 계곡을 걸어간 모습을 머리에 그려보며
순종하지 못하여 앞에 가나안을 두고서도 험하고 머나먼 길들을 걸어가야 했던 이스라엘 백성이
어쩌면 우리네 인생길과도 같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또한 이스라엘에 기근이 들어 양식을 찾아 모압 땅으로 가는 나오미 가족이 지나 갔던 길이 이 아르논이고
모든 것을 다 잃고 나오미와 며느리 룻만이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 갈때도 이 험난한 아르논 골짜기를 걸어갔다
이 길을 걸었기에 가나안이 있었고 이 길을 걸었기에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오르는 복된 여인이 되지 않았을까?
*카락성(Kerak)*
오늘날 카락(Kerak)은 구약성경에 길하레셋(Kir-Hareseth), 길 헤리스(Kir heres) 또는 길(Kir)로서
고대 모압 왕국의 수도이다(사16:7,11, 렘48:31,36,사15:1)
암만에서 남쪽으로118km, 아르논 남쪽 28.4㎞,사해 동쪽 17.6㎞ 지점의 해발 933m 고원에 위치한 이 곳은
삼면이 깊은 계곡으로 둘러싸여 주변의 언덕과 천연의 요새를 이루고 있으며
왕의 대로변에 위치하여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아르논에서 카락으로 가는 길에서 본 풍경들
조금이나마 풀이 있는 곳에는 이렇게 양떼들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카락성으로 들어가는 길목이다
성경적으로는 모압의 메사왕이 이스라엘의 아합왕이 죽은 후 해마다 바치던 조공을 바치지 않자
아합의 아들 여호람왕이 에돔왕국과 연합하여 모압을 정벌하게 되는데,
당시에 메사왕은 디본에 그의 수도를 두고 있었으나 여호람의 군대가 승전을 거듭하자 길 하레셋으로 후퇴하여
이스라엘 연합군이 바라보는 가운데 그의 장남을 산 채로 불에 태워 모압족의 신이었던 그모스에게 바쳤던 곳으로
이로 인해 이스라엘 군대가 퇴각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왕하 3:9~20)
현재의 카락성은 십자군 시대의 1142년 볼드윈 1세에 의해 쌓은 성채이다
카락성에 주둔지를 정한 십자군은 이슬람의 전쟁 영웅인 살라딘의 1년여에 걸친 끈질긴 고사 작전에도 잘 버텨냈다.
카락성이 함락될 것 같지 않자 살라딘은 여동생을 투입했다
살라딘의 여동생은 마치 거리의 여인처럼 십자군 병사들을 유혹, 카락성의 비밀통로를 알아내게 된다
결국 비밀통로가 이슬람에게 넘어가자 1년여를 버티며 항전하던 십자군들도 1189년에 손쉽게 무너져버렸다
카락성에서 내려다 본 마을 풍경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성채는 중세 십자군 시대에 쌓여진 것으로 이중, 삼중으로 쌓여져서
이곳에서 일어난 전쟁의 역사를 증언해 주기에 충분하며 특히 성 안에는 막사와 감옥이 아직까지도 잘 보존되고 있다.
고지에 위치한 이 성의 가장 큰 문제는 식수였는데, 우물은 예부터 성 밖에 있었다.
그래서 이 성읍의 바로 밑에는 수로로 추정되는 180m 정도의 터널이 있다.
1924년 발굴을 통해 모압인과 로마시대부터 중세 아랍시대의 도기들이 발견되었다.
성체 밖 외부로 나가는 길
성채 밖을 나와서
카락성 위에서 내려다 보는 마을풍경과 산지들
*참고 왕의 대로*(민20:17, 21,22, 신2:27))
왕의 대로는 요단 동편 산지를 중심으로 아카바만에서 에돔, 모압, 아모리를 거쳐 시리아의 다마스키스까지
남북으로 길게 뻗은 국제적인 도로이다(민20:17,21,22, 신2:27)
성경에 기록된 왕의 대로는 고대 근동세계에서 군사의 이동과 무역의 통로로 중요한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이용되고 있는 도로이다.
아브라함때 북부 동맹군이 사해 동맹구를 쳐들어 올때 '왕의 대로'를 통과하였고(창14:1~9)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하여 가나안에 들어갈때도 '왕의 도로'를 통과하였다(민20:17~!8.21:22)
역대의 왕들이 '왕의 대로를 통과하여 나라들을 정복하였다
이제 우리 순례일행들도 '왕의 도로'를 통과하며 순례의 길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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