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요르단 성지 순례기

성지순례 10. 요르단, 암몬성, 헤스본,

bonitahuh 2022. 10. 14. 05:23

요르단*

여행 4일째 이스라엘을 떠나 오늘 오후 요르단으로 간다

요르단은 면적은 91,000km2로 우리 남한보다 조금 적으며 인구는 500만명 정도며 수도는 암만이다.

1946년 영국의 위임 통치에서  독립할 때의 국왕은 후세인 국왕으로 그는 마호메트의 42대 직계손이란다.

그렇기 때문에 요르단은 아랍세계에서 알려진 최고의 혈통국가이고 이슬람교가 국교로 되어 있고 언어는 아랍어이다.>

오늘날의 요르단은  구약시대에 에서의 후손인 에돔이 제일 남쪽인 사해 남부에 위치하고 있었고,

롯이 두 딸과 상간하고  나온 민족인 모압이 사해 동부지역에, 그리고 암몬이 요단강 동부지역에 각각 위치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하였을 때 요르단 지역은 이스라엘과 분쟁을 벌였던 에돔과 모압 등이 있었고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장기간 체류하였던 광야도 요르단 지역에 위치한 모압평지였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입성 직전 모세의 마지막 설교 세편도 여리고 맞은편 모압평지에서 있었고

엘리야가 승천한 곳도 모압평지 지역이다

아론이 죽었던 호르산, 모세가 죽었던 느보산 ,입다의 고향인 길르앗지역, 다윗이 함락시킨 랍바성

 엘리사 당시 모압왕 메사와 이스라엘 유다 연합군이 싸웠던 케락성 지역,

이 지역 모든 물자 수송을 담당했던 왕의 대로 등 사사시대 이전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 동쪽 지역인 요르단땅을 르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

사사시대부터 이 지역이 정식으로 이스라엘의 영토가 되어 이스라엘 역사에 나타나게 되었다

이렇게 요르단은 족장시대에서 출애굽 시대를 거쳐 왕정시대에 이르기까지

구약의 역사와 매우 긴밀한 관계를 가진 성지였다고 말할 수 있다.  

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번 11박 12일간의 성지순례기간 동안 우리가 줄곧 타고 다니는 최신 벤즈 버스다

50 인승인데 우리 일행은 기사 가이드까지 35명 안팍이라 넉넉하게 앉아 편하게 다닐 수 있음도 감사한 조건이다

이제 요르단에서의 일정은 신태훈 선교사님께서 가이드 해 주신다

신 선교사님은 전문 가이드가 아니시고 우리와 동행한 부목사님이신 신대위 목사님의 신학교 동기 절친으로

목사님께서 특별히 부탁하신 모양이다

이곳 요르단에서 선교사를 일하신지 거의 10여년이 되셨다 한다?

이스라엘과 요르단 국경인 벳산 (Beit She'an)이다

 현재 요르단은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이 체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에서 요르단으로 비교적 쉽게 왕래할 수 있다

간단한 입국 수속을 마친후 요르단 암만을 향하여 버스는 달린다

신 선교사님이 설명하셨는데 요단강에서 흐르는 물이라는데 강 보다는 개천정도 수준이다

벳산 국경지대를 거쳐 암만으로 가는 길목이다

 * 암몬성(Rabbah Ammon) (창19:36-38, 민21:2)

옛  암몬의 수도가 랍바이며 다윗의 신하 요압에 의해 정복당했으며 현재 요르단의 수도 암만이다

구약성경에는 랍바 성으로 언급되고 신약성경에는 이 도시에 대한 언급이 없다.(암1:14, 수13:25, 삼하11:1)

헬라와 로마시대에는 데카폴리스(10개의 헬라-로마식 도시) 중 하나인 필라델피아(헬라-나바티안-로마-비잔틴시대)로 불렸고

 주후 7세기 움마야드 왕조때부터 암만으로 불렸다.

암몬은 롯의 두 딸이 아버지와 상간하고 낳은 자식들이 암몬과 모압의 조상들이 되었다

주전 21세기 부터 롯의 후손이었던 암몬 사람들이 현재의 암만을 중심으로 정착해 나갔다 (창19:36-38, 민21:2)

암몬의 옛  성터가 남아 있다는데 우린 가보지 못했고  이 여행기를 쓰면서 사진으로나마 알게 되었다

암몬은 갓 지파가 분배받은 땅의 경계에 있으며 (수13:25)

(수13:25) 바산 왕 옥의 철 침상이 있었고(신3:11

          

다윗의 신하 요압이 정복하였다(삼하10:7-19, 11:1-27, 12:1-31, 대상20:1)

장차 폐허가 될 것으로 예언되었다(렘49:2-3, 겔21:20, 25:5, 암1:14)

다윗의 충신 우리아가 다윗의 계교로 전사한 곳이기도 하다

암만 도시의 중심지인데 우리나라 중고차가 엄청 많이 도로를 달리고 있고 삼성간판도 심심찮게 보인다

이슬람권인 요르단은 여자들은 온틍 온 몸을 가리고 심지어 눈만 내놓고 다니는 여자도 많다.

이슬람 여자뿐 아니라 남자들도 여러가지 형태의 옷과 모자 스카프가 있는 모양인데

대체적으로 여성들은 알라가 코란에 언급한 머리에서 상체까지 얼굴만 내놓고 가리는 히잡을 두르고

 남자들은 큰 사각형 보자기같은 스카프를 솜씨좋게 모자처럼 만들어 머리와 목을 휘감아 쓴다.

특히 요르단 남자들은 흰 바탕에 빨간 바둑무늬가 있는 것을 즐겨 사용한단다

상점 쇼윈도에 보이는 화려한 옷들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은데 집에서는 아주 히잡과 긴 옷도  다 벗고

오직 남편에게 잘 보이려고 사치를 한단다.

이슬람 남자들은 코란에 부인을 능력에 따라 4명까지 둘 수 있다하니 남자 천국이렸다?

 

*헤스본(Heshbon, 히스반-Hisban 책략)

암만이 암몬의 옛 성읍이라면 헤스본은 아모리 족속의 수도였다가 나중에 모압의 옛 성읍으로 현재 히스반 마을이다

암만 남쪽으로부터 약 19 km떨어져 있으며 요단 강 동쪽 약 25km 지점의 해발 895m의 고원지대이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암몬과 모압 족속의 땅을 점령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가나안 땅으로 입성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압과 암몬을 치지 않고 우회해서 가나안 땅으로 입성해 간다

모세의 출애굽 당시에 이 지역은 아모리 왕 시혼에게 빼앗겨 아모리왕 시혼의 도성이 되어 있었다(민21:25-26)

이스라엘은 아모리 왕 시혼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이 땅을 통과하게 해달라고 청하였지만 오히려 아모리 왕 시혼은

바산왕 옥과 협력하여 군대를 모아 광야로 집결시켰다(민 21: 22:)

부득이하게 전쟁을 하게된 이스라엘은 결국 모압과 암몬 사이에 있었던 아모리인들이 다스리던 땅 헤스본은 물론

암몬 자손의 영토와 바산 지역까지 점령하게 된다

만약 아모리 왕 시혼이 영내 통과를 허락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이스라엘은 암몬과 모압의 전쟁을 금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헤스본을 우회해서 가나안으로 향했을 것이고

요단강 동편의 땅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헤스본에서 바라본 메드바 고원지대의 비옥한 모습.

출애굽 과정에서 광야 생활에 지쳐있던 르우벤, 갓,므낫세반 지파가 그 땅의 풍요로움에 반하여

요단강 건너 약속의 땅으로 가지 않고  이곳에 머무르는 선택을 하였고

가나안 정복에 끝까지 참여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분배받았다(수13:23~31)

지금도 우기가 지나면  헤스본과 마다바 지역은 녹색의 평야가 펼쳐지며 

목동이 양을 몰고 가는 이런 풍경을 이곳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어째 양들이 회색빛으로 거무튀튀한데 선교사님도 처음 여기와서 성경에 양털같이 희고 라는 말이 이해가 안되더니

비가 한번 오고 나면 온갖 흙먼지가 다 씻겨져서 양들이 하얗게 깨끗해 진단다.ㅎㅎㅎ

헤스본 성을 살피다보면 초기 히브리 글자들이 새겨진 커다란 돌들과 시대에 따른 건축 문양이 나타난다

예수님 시대에 들어서는 헤롯 대왕이 헤스본을 군사전략지로 요새화 시켰었다.

로마시대에는 에스부스(Esbus)라 불리는 번성한 성읍이 되었다

로마의 점령 후에는 로마인들이 이주해와 이곳 헤스본과 엘르알레 지역에 이주해 살았던 마을 흔적이 남아 있다.

로마 점령 이후 "" 까지<="" 세기=""헤스본은 마다바 지역과 연관한 기독교 비잔틴 문화가 계속 이어졌으며

그 당시 지어졌던 비잔틴 양식의 교회 터를 헤스본성 정상에서 볼 수도 있다

요르단이 기독교화 되었을 때에는 주교좌가 설치되기도 했다.

그 후 이스라엘이 차지했다가 북이스라엘 아합 왕이 죽은 후 헤스본은 다시 모압의 땅이 되었다.

그 후 이 지역은 그리스, 로마 등을 거쳐 중세 이후엔 오스만 터키 등의 지배를 받았다.

현재는 비잔틴 시대 목욕탕, 비잔틴 시대 교회 건축물 등을 포함해 여러 유적들이 남아 있다.

로마 시대 유적들도 폐허 상태로 마을 북쪽의 왼편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일찍부터 도시가 발달한 이곳에서 많은 유물이 발굴되었는데, 지금 현재도 계속 발굴 중이다

 황량한 요르단의 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