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전쟁사

페르시아 전쟁(그리스.폐르시아 전쟁)

bonitahuh 2022. 10. 12. 07:22

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연합과 페르시아 제국이 격돌한 전쟁이다(BC 499~ 450)기원전 5세기에 동서양이 맞붙은 최초로 맞짱 대결한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전쟁.으로 그리스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전투가 가장 치열했던 것은 B.C.490년~B.C.479년 페르시아가 2차례에 걸 그리스 본토 아테니를 침공했을 때였다. 
BC 550년,  페르시아(지금의 이란 지역) 는 세 번째 통치자인 다리우스 1세 때 전성기를 맞아,오리엔트 세계를 통일하고 이집트와 마케도니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소아시아(지금의 터키 지역) 역시 페르시아의 지배 아래에 있었고, 지중해 서해안에 위치한 그리스의

식민 도시들도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게 되어 무거운 세금에 신음해야 했으며, 결국 이들은 그리스 도시

국가인 아테네의 도움을 받아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이렇게 되자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는 BC 492년, 마침내  군대(약 2만 5천명)를 일으켜 그리스 아테네를 공격했다.

페르시아 대군은 아테네의 북동쪽 마라톤 해안에 상륙하여 치열한 싸움을 벌였지만, 명장 밀티아데스가

지휘하는 아테네군은 불타는 애국심으로 맞서 싸워 승리하였으며, 이것이 바로 유명한 마라톤 전투이다.

피해는 페르시아 쪽은 6,400여명 아테네쪽은 192명에 불과했고.. 이때 승리의 소식을 알린 전령 필리피세스

40km가 넘는 거리를 뛰어가서 아테네에 승전보를 알리고 숨을 거두니..

이것이 마라톤 경기의 기원이 되며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페르시아는 마라톤 전투에서 패했으나 원정을 다시 계획하던 다리우스 1세가 갑자기 죽게 되자,

그 아들인 크세르크세스가 기원전 480년에 다시 군대를 일으켰다.

 

이때 아테네는 실력자 테미스토클레스가 함선 200척을 만들며 전쟁 대비에 박차를 가하며 그리스 연합군을 만들어 육군은 스파르타, 해군은 아테네가 주력을 맡으며.. 육지쪽 그리스 연합군은 테르모필레라는 산마루 협곡에 진을 치고 수군은 아르테미시온 지역에서 맞서 싸우기로 한다. 

우선, 테르모필레의 그리스 연합군은 3,400여명 됐는데.. 이중에서 강한 부대가 스파르타의 정예 300명이었다.

이 때 그리스의 도시국가인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왕이 이끌고 온 정병 300명이 테르모필레에서 페르시아 대군과 싸웠다. 그 곳은 벼랑이 바다까지 이어져 있는 천연의 요새였다.

그러나 스파르타군은 마지막 1명까지 용감히 싸웠지만 전멸당했다

이 전투는 알다싶이 영화 300에서 폼나게 잘 그렸는데.. 헤로도토스의 <역사>의 내용에서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영화니까 다소 픽션이 가미되었지만 개인적으로 감명깊게 보았다

 

페르시아군은 요새를 돌파하여 아테네로 물밀듯이 쳐들어갔으며, 페르시아군에 짓밟힌 성 안은 불바다

가 되었지만  아테네의 제독 테미스토클레스는 함대를 이끌어 페르시아의 대함대를 살라미스 해협으로 유인한 뒤,

적의 함대를 포위하고 일제히 공격했다.

좁은 해협에 갇히고 폭풍까지 불어 페르시아 함대는 갈팡질팡하며 불길에 휩싸이고. 세계 4대 해전 중 하나인

살라미스해전에서 아테네군은 대승리를 거두었다.

당황한 크세르크세스왕은 페르시아로 도망하고 결국 페르시아 전쟁은 그리스군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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