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전쟁사

30년 전쟁

bonitahuh 2022. 10. 12. 06:50

1.개요

독일을 무대로 벌어진  30년간의 전쟁으로서 최후 최대의 종교전쟁이라고 일컬어진다.

30년 전쟁이란 표현을 처음 쓴 이는 17세기의 사무엘 폰 푸펜도르프(Samuel von Pufendorf)라고 한다.

 

2.전쟁 원인

1517년 독일의 루터가 카토릭에 대항하여 종교개혁의 불씨를 던진 결과 태동한 것이 프로데스탄트 교회가 태동하였다

당시 교황과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는 프로데스탄트 교회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으나 이미 개신교는 각 영주를 중심으로

너무 많은 세력을 확보 하고 있었다

 

당시에 보헤미아 지역(현 체코 지역)은 프로테스탄트가 우세한 지역이었다

1617년에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였던 페르디난드 2세가 보헤미아의 왕을 겸하게 되었다

그는 카토릭 교도였기에 프로데스단트들을 탄압하였고 이에 반발하여  1618년부터 30년간 신 .구교간에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3,전쟁의 내용

프로테스탄트 국가였던 덴마트, 영국, 네델란드,프랑스의 군대가 독일의 프로테스단트 교회를 돕기 위해 출정하게 된다

전쟁의 전반기에는 프로테스단트의 열세로 먼저 덴마크가 독일에 패하여 물러가고 스웨덴 국왕도 전사하므로

카토릭 세력의 승리였다

허지만 카토릭 국가였던 프랑스가 유럽에서의 세력확장을 위하여 오히려 스웨덴과 연합하여 독일 카토릭 세력을 침범하고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의 카토릭 국가들은 독일 카토릭 세력을 도우므로 양자간에 밀고 밀리는 30년간의 전쟁이 게속되었다

이 전쟁은 1648년 독일 민스처 시청에서 열린 베스트팔렌조약이 성립되어 30년간의 종교전쟁은 종지부를 찍었다..

 

 

4. 전쟁의 과정 

전쟁의 경과는 황제파의 대전국에 따라 다음 4단계로 나뉜다

전쟁 기간은 대체로 네 시기로 구분하며, 앞의 두 시기 (1618년 ~ 1620년, 1625년, 1629년)는 종교적 성격을 띄었고

뒤의 두 시기 (1630년 ~ 1635년, 1635년 ~ 1648년)는 유럽 국가간의 이권 싸움의 성격을 띄었다.

 

 

1. 보헤미아-팔츠전쟁 (1618-1623)

독일의 신교(프로테스탄트)와 구교(가톨릭) 양교도 간의 반목은 1555년에 있었던 아우크스부르크 화의(和議) 이후에도 가시지 않아,

17세기 초 양파의 제후(諸侯)들은 각기 신교 연합과 가톨릭교 연맹을 결성해 대립했다. 

이와 같은 정황 속에서 1617년 가톨릭교도인 페르디난트가 보헤미아의 왕위에 올라 가톨릭 절대 신앙을 강요하려 하자

보헤미아와 오스트리아의 프로테스탄트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1619년 페르디난트 2세가 황제가 되자 보헤미아인들은 팔츠 선제후(選帝侯) 프리드리히 5세를 국왕으로 받들고 이에 대항하여 싸웠으나

1620년 바이서베르크 싸움에서 패배하여 프리드리히 5세는 네덜란드로 망명하고 보헤미아의 신교(프로테스탄트)도들은 탄압을 받기 시작하였다

 

 

2. 덴마크전쟁 (1625-1629)

 진작부터 독일에 영토적 야심을 가지고 있었던 덴마크왕 크리스티안 4세는 이를 기화로 영국 및 네덜란드로부터

 군자금을 얻어 1625년 신교(프로테스탄트)도군의 총수로서 독일에 침입하였으나 황제군의 장군 발렌슈타인과 틸리에게 패배

 하여 1629년 양측은 뤼베크 조약으로 화해하였다.

 이에 따라 황제는 배상령(賠償令)을 내려 종교제후(宗敎諸侯)의 영지(領地) 회복과 루터파(派)의 공인(公認)을 선포하였다

 크리스티안 4세의 패배와 1629년의 뤼베크 평화조약으로 유럽 강국으로서의 덴마크 지위는 종말을 고했다.

 

 

3. 스웨덴전쟁 (1630-1635)

스웨덴왕 구스타브 2세가 신교를 옹호하고 프랑스의 후원을 얻어 다시 독일에 침입했다.

스웨덴군은 황제군을 브라이텐펠 전투(Battle of Breitenfeld)에서 격파하고 틸리를 전사시켰으나 1632년 뤼첸 전투 에서

 구스타브 2세도 전사했다. 이후 스웨덴군은 전투를 계속하였으나 패배를 거듭하여 1634년 황제군 사령관 발렌슈타인이 모반혐의로 암살되자 1635년 황제와 그리스도교군의 작센 선제후 사이에 프라하 화의가 성립되었다.

 

4. 프랑스-스웨덴전쟁 (1635-1648)

프랑스는 30년전쟁 개시 이후 항상 반(反)합스부르크의 흑막적 존재로서 신교파에게 원조를 하고 있었는데 신교파가 약하게 되자 전쟁의 정면무대에 등장하여 프랑스군은 남부독일로 침입하였고, 스웨덴군도 공격을 재개하였다 

전쟁은 일진 일퇴의 전황 속에 끌어가다가 1637년 황제위를 계승한 페르디난트 3세는 전세의 불리와 국내 제후들이

오랜 전쟁으로 시달려 1641년 종전을 제의하였다.

1644년부터 열린 강화회의는 지지부진하다가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이 성립되어 30년간의 종교전쟁은 종지부를 찍었다..

 

5.전쟁의 결과

네델란드와 스위스는 독립을 인정 받음

프링스와 스웨덴의 영토확장이 보장됨

전쟁터였던 독일은 페허가 됨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의 권력이 약화되어 각 영주들에게 쪼개짐

개인 종교선택의 자유가 주어지고  독일 제후국 내의 가톨릭,·루터파·칼뱅파는 각각 동등한 지위를 확보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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