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들레헴 전경
우리 크리스쳔들에게 너무나도 친숙하고 다정한 이름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남서쪽으로 8 km떨어진,
해발 700~800미터의 산악지대로 동굴이 벌집처럼 많은 석회암 언덕의
비탈에 위치하고 있으며 올리브 수확이 많기로도 유명하다
요르단에 속했었으나 1967년 제3차 중동전쟁(6일 전쟁) 이후에는 이스라엘의 관할지가 되어 유대인들이 정착하여 살았다
그러나 1993년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맺어진 ‘오슬로 평화협정’의 결과로, 1995년 12월부터
팔레스타인 자치구인 West Bank 안에 위치하고 있어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다
현재는 이스라엘 통치권과는 상관이 없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영향 아래 있다.
나사렛에서는 아랍계 기독교인의 수가 모슬렘의 수보다 많은 반면,
베들레헴은 예수님이 탄생하신 곳임에도 기독교인(구교 20%) 의 수보다 모슬렘(80%)의 수가 월등히 많다.
이스라엘 정부는 테러 공격을 차단하고 주민들을 보호하겠다는 명분으로
지난 2002년부터 요르단 강 서쪽에 장벽을 건설해왔다.
소위 '분리장벽'으로 불리는 이 벽은 총 길이 712km, 높이 8m~9m에 달한다.
이스라엘은 '보안장벽'으로 팔레스타인은 '분리장벽'으로 부르는 이 장벽으로 두 민족간의 골은 점점 깊어지고 있다.
따라서 예루살렘에서 분라장벽 안 웨스트뱅크안에 위치한 베들레헴으로 들어가려면
두 개의 체크포인트(예루살렘 쪽과 베들레헴 쪽)에서 검사를 받고 들어가고 나온다
인구 3만여 명의 작은 도시가 9 미터 높은 분리장벽에 둘러싸여 ‘육지 속의 섬’이 되었다
분리장벽은 이중으로 되어 있어서 두 번의 엄격한 검문을 거쳐야만 베들레헴으로 들어 갈 수 있다.
분리장벽의 모습이다
베들레헴은 ‘베트’와 ‘레헴’ 두 단어로 만들어진 합성어인데 그 뜻이 아랍어와 히브리어 사이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베트(B?t)’는 양쪽 다 집이라는 뜻인데 ‘레헴’은 아랍어(Lahm)로는 고기, 히브리어(Lehem)로는 빵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베들레헴은 아랍사람들에게는 고깃집이라는 뜻이고 유대인들에게는 빵집이라는 뜻이다.
베들레헴은 아주 오래 된 도시로 야곱의 아내 라헬이 베냐민을 낳고 죽었을 때 장사한 곳(창 35:19)이며
사사기에 나오는 레위인의 첩이 베들레헴 출신이며(삿 19장)
룻기의 배경으로 모압 땅에서 돌아온 나오미와 며느리 룻이 정착한 곳이 베들레헴(룻 1:19)이며
룻은 여기서 형제의 기업을 무를 자로 보아스를 만나 결혼하여 (룻 4). 후에 다윗의 조모가 된다
또한 베들레헴은 다윗의 고향(삼상 16:1, 13)이며 요셉과 마리아의 고향(눅 2:3-5)이기도 했다.
베들레헴이 블레셋에 의해 점령당했을때 다윗의 신하들 중 3명이 적진을 뚫고 들어가
다윗의 고향 베들레헴의 우물물을 떠다가 다윗에게 바쳤다(삼하 23:14~17)
이스라엘이 남북이 분열된 후 르호보암이 요새화하기도 했는데(대하 11:6)
그 후 천년동안 예루살렘 근교의 작은 마을로 남아 있다가 BC 6세기 경에 바벨론에서 귀환한 123명 만이 이곳에 살았다
미가 선지자는 이 작은 귀환에도 불구하고 장차 메시아가 이 곳에서 탄생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미5:2, 마 2:6, 요7:4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자가 네게서 나올 것이라”(미5;2, 마2;6)
나사렛에 살던 요셉과 마리아는 인구조사차 호적하러 베들레헴에 왔을 때 예수님이 탄생하게 된다.
베들레헴에는 이러한 배경으로 예수님 탄생교회와 목자들의 들판교회가 대표적인 순례지로 꼽힌다.
예수 탄생교회 앞에서 바라다본 베들레헴 풍경
예수 탄생교회 입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중 하나로 에수께서 태어나신 장소로 알려진 동굴 위에 지은 교회로
십자가 모형의 길이 52m 폭 23m 이며 천정은 목재를 사용했다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신후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곳 지하동굴을 기도의 장소로 사용하였는데
이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로마황제 하드리아누스가 AD 135년에 기독교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유대인 반란을 진압한 후에 이 곳에다 아도니스 신전을 세웠다
그 후에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성지순례차 베들레헴에 들렸다가 이 거룩한 곳에
아도니스 신전이 서 있음을 보고 신전을 헐고 예수 탄생 기념교회를 짓도록 명령하였다
예수 탄생교회는 예루살렘 대 주교인 성 마카리오스의 관리하에 AD 333년에 완성되었으나
얼마되지 않아 이 지역의 큰 지진으로
무너졌다가 AD 510~529 년 사이에는 비잔틴 제국에 반란을 일으켰던 사마리아인들에 의해
불에 타버리고 기둥 몇 개만 남게 되었다
지금 우리가 보는 성당은 비잔틴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565년에 완공한 것으로,교회 지붕과 바닥과
내부 장식정도만 바뀌었을 뿐 나머지는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건물이다.
기원후 614년 페르시아 군대가 베들레헴을 점령했을때 모든 성당을 파괴해버렸으나 예수탄생 성당만은 그대로 두었다.
그 이유는 예수탄생을 벽화로 그려놓았는데 벽화에 그려진 동방박사의 옷이 페르시야 조상들의 옷과 같았기 때문에
페르시아군인들은 자기네 조상들을 대하고 나서 너무나 감동한 나머지 교회를 파괴하지 않고 오히려 참배를 했던 것이다.
AD638년에 이스라엘을 점령한 이슬람의 오마르군주도 이 곳에서 기도를 드리고 갔다는데 코란에 의하면 동정녀 마리아가
하나님의 종이며 예언자인 예수를 종려나무 아래서 낳았는데 이 종려나무가 있던 곳이
바로 예수탄생교회 자리라고 하는 전승때문이라니.
교회 출입문인데 높이 1.2 m폭이 80cm로 머리를 숙여 겨우 한사람씩 들어갈 수 있다
사진에 보이는 아치형의 벽돌 모습이 본래의 문이다
작은 문 으로 한 사람씩 겨우 머리를 숙여 들어가는데 AD 12세기 십자군 시대에 큰 문을 막아 버리고 아주 작게 만들었는데
이 거룩한 문을 침략자들이 말을 타고 들어가는 것을 막고 누구든지 머리를 숙이고 겸손히 들어가게 하기 위함이란다
그래서 이 문을 가리켜 '겸손의 문' 혹은 '좁은 문'이라고도 한다
이 문을 들어가서 또 다른 작은 문을 들어서야만 비로소 교회안으로 들어간다
교회 내부로 들어서면 11개의 돌기둥이 양편에 둘씩 모두 네 줄로 바실리카 (Basilica)건축 양식으로
만들어져 세워져있는데 이 기둥들은 11제자와 4복음을 상징한다고 한다
사진 왼쪽 옆에 보면 나무판자가 보이는 이곳을 열면 헬레나 왕후가 처음 교회를 건축할때 장식했던
비잔틴 시대의 모자이크 바닥이 아직도 잘 보존되어 있다
예수탄생교회는 카톨릭을 대표하는 프란치스코회와 그리스 정교회,아르메니아 정교회 간의
STATU QUO(현상유지법)이 적용되는 곳이다
세 종파간에 성당의 소유권과 사용권이 법으로 규정되어 있다
아름다운 십자가 모자이크가 보이는데 곡선이 여러겹 교차해 있는 것이 우리 나라의 매듭 기법을 연상케 한다.
탄생교회의 대부분은 그리스 정교회 소속이지만 에수탄생동굴 위의 제단에서 왼쪽은 아르메니아 정교회 소유이고
구유 동굴 부분인 구유제단과 구유는 카톨릭 소유이다
베들레헴의 예수 탄생 성당 제대 오른쪽에 있는 예수 탄생 동굴로 내려가는 입구 모습이다
지하 계단으로 내려 가면, 예수님이 탄생한 곳, 구유가 놓였던 곳,동방박사가 경배한 곳 등이 있다.
예수 탄생 동굴은 성당 제대 바로 아래 지하에 있고, 입구는 제대 좌우로 두 개가 있다.
교회 중안 제단의 오른쪽에 있는 그리스 정교회 쪽 또는 왼쪽에 있는 아르메니안 정교회쪽 계단을 내려가면
제단 아래 쪽에 폭 3.5 m 길이 12.5 m정도의 예수탄생 동굴이 있다
이 동굴 바닥에 베들레헴의 별이라고 하는 예수 탄생 자리가 있다
각 종파의 11개의 은제 램프와 외양간 예수탄생 자리를 표시하는 14개의 꼭지점을 가진 은색 별이 바닥에 있다
이것은 인류 구원의 역사를 펼치신 십자가의 길 14개처를 나타내는 동시에 아브라함으로부터 다윗까지 14대
다윗으로부터 바빌론 유배시대까지 14대 그후부터 예수님까지의 14대를 상징한다
이 별은 1717년 십자군 시대에 카톨릭에서 은으로 만들었는데 그 둘레에다 라틴어로
이 곳에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셨다" 하고 새겨 놓고 바닥에 장식하였다
이 별을 러시아 정교회가 제거했는데 (1847년) 오스만터키가 원상 회복을 요구하며 분쟁이 일어나
결국 크리미아(크림)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1853-1856).
현재 이 곳은 그리스 정교회, 아르매니안 교회,`로마 카톨릭이 공동 관리하고 있다
예수 탄생동굴은 정교회 소속이지만 바닥의 별은 카톨릭 소속이란다.이해 곤란?
아기 예수를 뉘었던 구유가 놓였던 자리
예수탄생교회 동방박사가 경배하던 곳
지하동굴에서 목사님의 인도로 잠시 말씀 묵상과 기도를 하였다
우리가 순례할때는 교회 내부가 수리 중인 곳이 많아 너무 어수선 했다
낡고 오래되고 침침한 내부에 많은 순례객들로 붐비며 정교회식, 카톨릭 식의 내부 장식과 성상들 벽화들,
성화들로 성묘교회와 마찬가지로 경건하다는 느낌은 거의 없고 너무 어지럽고 정신이 없다
벽들을 자세히 살펴 보니 오래된 진한 갈색의 낡은 가죽같은 벽면에
섬세하게 성화가 그려져있는데 오래되어 희미하게 보일뿐이다
탄생교회에서 바로 옆 복도로 나오면 탄생교회 왼쪽 벽에 맞대어 지은 성 캐더린(The Church of St. Catherine)교회가 있다
이 교회는 예수 탄생교회 동굴과 서로 통하게 되어 있다
1881년에 프란치스코회에서 교회를 건축하였으며 지금도 여러차례 미사가 드려지고 있다
특히 성탄절 전야에 예루살렘 주재 카톨릭 총대주교가 집전하는 미사는 전 세계로 중계방송된다
성 카타리나 (St. Catherine)성당 전경
전승에 의하면 성녀 카타리나(St. Catherine)는 알렉산드리아의 상류가정 출신의 학식과 미모가 뛰어난 처녀였다
그녀가 그리스도인이 된 후 막센티우스 황제의 그리스도인의 투옥을 공개적으로 비난하였는데
그녀가 너무 아름다워서 죽이기 아까웠던 황제는 그녀가 개종하도록 50여명의 학자들을 보내 회유하도록 하였으나
오히려 그 학자들이 다 개종하게 되었다
그녀가 만일 개종한다면 왕비로 삼겠다는 회유책을 거부하여 두시간동안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녀가 갇힌 감옥 독방에는 비둘기들이 음식을 날라다 주었으며 큰 못이 박힌 바퀴로 고문을 당하였지만
그녀의 몸은 상처하나 없이 오히려 구경꾼들이 튀어나온 못에 죽었다고 한다
이러한 그녀의 신앙심에 수많은 군인들과 사람들이 개종하여 200여명이 그리스도인이 되자 마침내 그녀를 참수하여 버린다
그녀의 시신은 천사들에 의하여 시내산 기슭에 옮겨졌고 오랜 세월이 지난 후
그녀의 시신이 발견된 곳에 성 캐더린 수도원이 세워졌는데이 수도원이 성 캐더린 정교회 수도원이다
성당 정문 앞마당에 세워진 해골을 밟고 서 있는 제롬(St. Jerome)의 동상
해골을 밟고 서 있는 모습인데 그는 라틴어 성경 번역을 죽기 전에 마치기위해 늘 해골을 옆에 놓고 번역을 했다고 한다.
제롬은 영어식 이름이고 라틴어로는 히에로니무스 (Eusebius Sophronius Hieronymus)로 불리며
그냥 줄여 예로니모(Jeronimo)라고도 부른다(328~420)
주후 345년 이탈리아 북동부의 작은 마을인 스티돈에서 태어났다
그는 문법, 인문학, 수사학, 변증학을 공부했으며 헬라와 라틴 고전들과 철학에 능통한
기독교 성직자요 신학자요 역사학자였다.
제롬은 AD 382년 로마에서 교황 다마수스의 서기로 일할 때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할 것을 부탁받고
386년 베들레헴으로 가서 수도원 운동과 성경번역에 전념했다.
베들레헴에서 사역하는 동안 제롬은 히브리어에 기초한 성경번역을 계속했고 아기 예수 탄생교회 옆 동굴에서
빛도 들어오지 않는 공간에서 36년 동안 촛불을 켜 두고 그의 최대 업적인 히브리어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한 ‘불가타 성경’을 집필했는데 구약성경을 완역한 것이다(405년경).
그가 번역한 Vulgate성경은 세계 복음화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이 번역본은
지금까지 카톨릭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제롬은 언젠가 세상을 떠날 사람으로서 스스로 나태해지지 않기 위해 항상 책상에 해골을 두고 각성하며 번역했다고 한다.
제롬은 카톨릭 교회, 동방 정교회, 루터 교회, 영국 성공회에 의해 성인으로 인식되고 있다.
성 캐더린 교회내부인데 정면에 제단이 있고 위에 큰 파이프 오르간이 있으며 벽을 따라서
예수의 탄생에서부터 죽음까지의 모든 과정을 부조로 조각하여 붙여 놓았다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된 제단인데 아래에는 아기 예수의 성화가 그려져 있다
신학자 제롬(히에로니무스)이 이 동굴에 머물며 성경을 번역했다.
제롬(히에로니무스) 성인의 무덤과 비문
그는 유언대로 서재 옆 동굴에 묻혔고, 시신이 담긴 석관 앞면에는 손수 작성한 비문이 새겨져 있다
"이 곳은 내가 영원히 쉴 자리, 여기 거처하는 것이 내 소원이로다
하지만 살아 있는 사람들은 죽은 이의 소원을 끝내 들어 주지 않았다.
13세기에 이르러 예로니모의 시신을 로마 성모 대성당으로 이장해 버렸기 때문에
오늘날 베들레헴 동굴에는 빈 석관만 남아 있다.
초기 성도들의 무덤
목자들의 들판교회 정문이다
너무 늦어 굳게 문이 닫혀 들어가지는 못하고 안타갑게 문을 붙잡고 안을 들여다보는 고 집사님 ㅎㅎㅎ
베들레헴에서 동쪽으로 2km 지점에 보아스의 들판이라고 불리는 밭과 목장이 있는 벳사후에 있다
이 들판은 사사시대에 룻이 이곳에서 밀이삭을 줍다가 보아스를 만난 들판으로 전해지는 곳이며
천사들이 목자에게 나타나
아기 예수의 탄생을 알려준 곳으로 이를 기념하여 프란체스코에서 세운 교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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