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요르단 성지 순례기

성지순례 35. 텔 브엘세바(Tel Beer Sheva)

bonitahuh 2022. 10. 14. 23:46

예루살렘에서 남서쪽 120km 헤브론에서 48km정도 떨어져 있는 네게브 사막의 중심도시가 브엘세바이다

이스라엘에서 4번째로 큰 도시이자 교통의 요지라고 할 수 있다

브엘세바는 일곱개의 우물이란 뜻으로 “브엘”은 우물, 세바는 “일곱”이란 뜻이다.

 이것은 아브라함과 이삭이 땅을 파서 물을 얻은 '일곱 군데의 우물'에서 유래된 이름인것 같고(창21:19~33)

또한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이 우물을 놓고 서로 맹세한 데에서 '맹세의 우물'이란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창21:30~34)

성경에서 자주 언급되는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는 북쪽의 단과 함께 이스라엘의 남쪽 경계를 한정 짓는 도시였으므로

약속의 땅 이스라엘의 전 영토를 의미한다(삿 20:1; 삼상 3:20 ,삼하 3:10, 왕상5:5 대상21:2 대하 30:5).

그리고 ‘게바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란 표현은 남왕국 유다의 영토를 지칭한다(왕하 23:8).

즉 이스라엘의 영토 최남단이라고 할 수 있다(대상 21:2, 대하 30:5).

1969년~1976년에 텔아비브 대학 고고학 발굴팀에 의하면 브엘 세바는 BC4000 년경인 청동기 시대부터

AD 16세기까지의 유적이 발굴되었는데 이것은 엄청난 지하수 덕분에 고대부터 이곳에 마을이 형성되어 온 것으로 본다

그 증거로 인근에서 수 많은 우물들이 발견되었다

Tel이란 물이 귀한 사막기후인 이스라엘에서는 일단 물이 있는 곳에 도시를 조성하면 그 마을이

자연재해나 전쟁 등의 이유로 파괴된다 하더라도 이전 도시를 흙으로 덮고 그 위에 또 다시 도시를 조성해 왔다.

이처럼 시루떡을 쌓아 놓은 것처럼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이 남아 있는 고대 유적지 지형을 '텔'이라고 부른다. .

텔 브엘세바는 해발 300m의 언덕으로 브엘세바의 북쪽 둑을 따라가다 보면

헤브론 강과 만나는 곳과 가까운 넓은 계곡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텔 브엘세바는 1969 년부터 1976년까지 텔아비브 대학 고고학자들의 발굴작업에 의해서 발견되었다

이 유적지에서는 기원전 4천년경인 청동기 시대부터 기원후 16세기까지의 유적이 발굴되었다

텔 브엘세바는 기원전 8 세기경 히스기야 왕의 시대에 재정비되어 4백여명의 주민들이 살았으며

BC 701년 앗수르왕 산헤립에 의해 파괴되었는데 지금 남아 있는 주거지는 히스기야왕 때의 것이다

텔 브엘세바는 페르시아시대에는 군인들의 주둔지와 식량창고로 이용되었고 파괴되었던 주거지 위에 헤롯 왕이 성을 재건하였다

그 후 비잔틴 시대에는 사람들이 현재의 도시 쪽으로 옮겨 살았기 때문에 1969년 발굴될 때까지 땅 속에 묻혀 있었다

이무튼 이곳은 팔레스타인에서 애굽으로 향하는 대상로(隊商路)상에 위치한 고대 세계의 주요 길목이었다

역사적으로 브엘세바는 이스라엘에게 여러 의미가 있는 곳이다.

하갈과 이스마엘이 쫓겨나와 밤낮 방성대곡 하다 우물을 발견한 곳이며(창 21:14~19),

아브라함이 아비멜렉과 언약을 맺은 곳이며(창21:30~34)/p>

아브라함이 이삭의 번제사건 이후 되돌아와서 거주하였던 장소이며(창22:19)

아브라함 , 이삭 ,야곱의 주요 거처 가운데 하나였다(창22:19 26:23~25 46:1)

불쌍한 이삭이 그랄 목자들을 피해다니며 우물을 파고 파다가 이곳까지와서 우물을 팠고(창 26:23),

이삭이 광야에서 묵상하다가 하란에서 내려오는 리브가를 처음 맞이한 곳이다(창24:67))

또 야곱이 애굽으로 가던 중 단을 쌓고 하나님께 복을 약속 받았다(창 46:1~5).)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점령한 후 처음에 유대 지파에게 분배되었고(수 15:20, 28) 후에 시므온 지파에게 넘겨졌다(수 19:2,9).)

사무엘의 두 아들인 요엘과 아비야가 사사가 된 곳이며, 남 유다 요시야 왕의 어머니인 시비아의 고향이고(왕하 12:1),

또 한 가지 중요한 사건이 있었는데 엘리야 선지자가 너무 힘들어 하나님께 차라리 죽여달라고 했던 곳도 바로 이곳 브엘세바였다.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대1로 싸워 이긴 엘리야 선지자다 이세벨을 피해 도망쳐 브엘세바에 이른다.

그리고 이곳 로뎀나무 아래서 죽기를 구했던 것이다(왕상 19:3~4).

아브라함이 에셀 나무를 심고 영원한 하나님이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곳도 브엘세바이다(창21:33)

텔 브엘세바 불법의 제단 입구로 들어가서 오른쪽에 뿔 달린 불법의 제단 (암8:14)이 복원돼 있다

1969년 발굴작업중 사면에 뿔이 달린 돌로 깍아 만든 제단이 발견되었는데 제단의 돌들은 잘 다듬어진 돌들을 사용하였고

그 중 하나에는 뱀이 새겨져 있었으며 윗부분의 돌들은 검게 그을려져 제물을 바쳤던 제단임을 알 수 있었다

이스라엘의 남쪽 지방 브엘세바에서 정교한 뱀의 형상을 새긴 돌 제단이 발견되었다는 것은

당시 유대 왕국에도 혼합종교와 우상숭배가 만연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제단도 역시 BC 8세기 남유다의 히스기야 왕의 종교개혁때 파괴된 것으로 여겨진다

유다왕국에서는 예루살렘의 솔로몬 성전에 있는 제단 이외에 다른 곳에 제단이 세워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다른 곳에 만들어진 제단은 히스기야의 종교개혁때 모두 허물어 버렸다(대하 31장)

복원해 본 결과 1,6m x1.6m x 1.6m의 정 육면체로 사면에 돌로 깍은 뿔이 달려 있는 제단이었는데

여기 있는 것은 복제품이고 실제 것은 이스라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한다.

이스라엘의 성소나 성전의 번제단에는 그 네 모퉁이에 뿔이 달려 있었다

뿔은 성경에서 권세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제단의 뿔은 희생 재물을 매어 놓는데 사용되어지고또는 살인자가 도망하여

제단 뿔을 잡으면 보호 받을 수 있었으나 예외도 있었다(출21:14)

깊이기 70여m 되는 이 우물은 창세기에서 언급하고 있는 족장들의 우물이라고 전해진다

물이 있나 시험하려고 작은 돌맹이 하나 던져보니 5초 정도가 지나서야 퐁 하는 맑은 소리가 난다 ㅎㅎㅎ

무려 70m된다니 한참사 소리가 날 수 밖에...

고고학자 로빈슨(Robinson)에 의해 발굴된 텔-브엘세바 성문 앞에 있는 우물로 BC 12세기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명 아브라함의 우물이라고도 불리며 지금도 수질이 매우 좋다고 한다

비록 4천년전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은 아니지만 고고학자들이 관심을 끄는 것은 틀림없이 그 우물의 물줄기가 

 오래전인 족장시대부터 있어 왔다고 믿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삭이 브엘세바에서 우물을 파는 곳마다 물이 샘솟듯 솟아 났다>

이 지역의 엄청난 양의 지하수가 있다는 증거로 주위에서 수많은 우물들이 발굴되었다

멀리 보이는 전망대를 향하여 걸어가고 있다

텔 브엘세바의 전망대에 앉아서 보면 끝없는 광야가 눈 앞에 펼쳐지며 브엘세바의 유적지는 물론

현대 브엘세바 도시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줄지어 지나가는 낙타떼도 가끔 보인다는데..?

낙타떼는 보지 못하여 조금 아쉽다

전형적인 이스라엘의 사방구조의 가옥형태 유적이다

고대 브엘세바의 도로들은 바둑판 모양으로 설계 되었으며 행정, 군사, 상업 지역 과 주거지 지역이 구분되어 있었다

텔 브엘세바(고대의 성읍) 옆을 지나가는 나할(와디)의 모습으로 다리 밑 물이 지나가는 자리에 길이 난 모습을 볼 수 있다.

와디는 비가 올때는 물이 흐르지만 건기 때는 마르므로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 길이된다.

멀리 현재 브엘세바 도시 모습이 보인다

이곳은 물 저장소이다

우기에 와디에 물이 흐를때 그 물을 소로를 통하여 끌어들여 저장해 놓은 물 저정소이다.

텔 브엘세바 입구쪽에 있는 에셀나무(eshel) 아래서 한 컷!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머물며 에셀나무를 심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 (창21:33-34).

에셀나무는 뿌리를 깊게 내려 지하수를 빨아 들이므로 사막성 토질에서도 잘 자라 푸르름을 유지하며

그늘이 다른 나무와 비교해서 더 시원하다고하는데 이것은 잎에 염분기가 있기 때문이란다

실제로 잎을 따서 한번 씹어 보니 꽤 간간하다

이로 인하여 이슬이 더 많이 흡수되어 멀리서 보면 보석처럼 반짝이며 생명력이 강하므로

옛 사람들은 에셀나무를 신령하게 여겨 이 나무 아래서 신들을 섬겼다 한다

비록 이 나무가 아브라함이 심은 그 에셀 나무는 아닐지 몰라도 영원하신 하나님 이름을 부른 아브라함을 생각하며

나도 "엘 올람"(El Olam)을 가만히 불러 보면서 내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현재 브엘세바 도시의 모습

현대의 브엘세바는 네게브 사막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가 되었다

1900년대 이후 오스만 제국과 영국 통치 시기를 거치면서 발전하였다.

20세기에 들어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이스라엘 독립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귀환하였다.

현재 인구 20여만명의 브엘세바는 이스라엘에서 네번째로 큰 도시다.

브엘세바에는 이스라엘의 초대 총리 ‘다비드 벤 구리온(David Ben-Gurion)’이 세운

사막농업으로 유명한 ‘벤 구리온 대학’이 자리 잡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에서는 독립 후 버려진 사막을 개간한 후 농업용 수로를 만들고 스프링쿨러로 물을 공급하여 옥토로 만들어 놓았다)

네게브는 토양이 좋고 여름에 햇볕이 강렬해서 과일과 야채가 아주 잘되어>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과일들은 이스라엘에서 극상품으로 취급되며 유럽 전역으로 수출하고 있다

연 평균 강우량은 200mm 정도이며 사람이 살 수 있는 남방 한계선에 해당된다

현대식 고층건물과 자동차의 물결이 낙타를 몰며 수천년전의 생활을 답습하고 있는 베두인의 시장과 혼재,대비와 조화를 이룬다

특히 근래에는 러시아의 유대인들이 많이 이주해 와서 정착해 살고 있다.

그런 까닭에 간판이나 공공 서비스 장소에는 러시아어로도 글들이 기록된 곳이 많다.

유목민인 베두인들이 브엘세바의 외곽에 자리잡고 살며, 또 브엘세바 주변에 있는 팔레스타인 농부들이 시장을 형성해

 유대인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면에서도 브엘세바는 중요한 도시다.

한편으로는 바로 옆에 팔레스타인 가자지구가 있어서, 분쟁이 일어날 때마다

팔레스타인의 테러와 로켓 공격으로 한 번씩 어려움을 겪는다.

브엘세바는 옅은 황토색의 사막 끝자락에 주택과 건물을 세우고 시장과 도로를 만들어놓은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황량하고 더운 이스라엘 남부의 네게브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도시이며,

사막이 변하여 옥토가 된다는 말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