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요르단 성지 순례기

성지순례 19. 쿰란(Qumran)

bonitahuh 2022. 10. 14. 07:15

성경에 대하여 조금만 관심이 있는 성도라면 아마도 쿰란과 사해사본이라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이제  저랑 함께 금세기 최대 최고의 고고학의 발견이라고 평가받고 있는 사해문서가 발견된 쿰란으로 가 볼까요?

 

예루살렘에서 35㎞거리이며 사해 북서 연안 해발 300m 고지 유다 광야에 '키르베트 쿰란' 유적이 자리하고 있다.

사해 북단으로부터 사해 주변 해안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약 5~6㎞ 정도 가면 우측에 위치한 건조한 평원이다.

이 지역은 주전 13세기 경에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 유다지파에 분배된

 ‘염성(鹽城)’이라고 하는 지역이다(수15:1~12)

기원전 2세기경 유대교 3대 종파 중의 하나인 에세네인들이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는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자신들만이 선민이라고 믿고 종말론적 신앙으로 세상의 종말을 대비하면서 사해사본을 남겼다

쿰란 공동체는 BC 2세기 중반부터 AD 70년까지  로마에 의해서 파괴될 때까지 존재했다.

사해 두루마리(사해 사본)와  쿰란 문서는 구약성경과 공동체 규칙, 종말에 이스라엘 백성이 지켜야 할 규칙 등

예수 시대 전후 유다이즘의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쿰란 유적을 보기 전에 먼저 이 안으로 들어가서 간단한 영상으로 쿰란에 대한

사전 설명을 듣는데 고맙게도 한국어로 설명이 나오니 한국인 순레객이 많아 배려한것 같다

안내 영화가 끝나고 스크린이 올라가니  스크린 뒤로 통로가 나온다

통로를 따라 걸어가니 유리벽 너머 에세네 학파 사람들이 필사한 두루마리 성경, 그것을 보관했던 항아리 모형,

그리고 이들이 당시 사용하던 그릇들과 옷을 보며 그들의 생활상을 잠시 엿보고 출구로 나오면

유적들을 보게 되는데 갑자기 뜨거운 열기와 환한 햇살에 눈이 부신다

사본을 보관했다는 항아리 모형들

그들이 쓰던 생활도구들

이렇게 나지막하고 좁고 길다란 책상에 앉아 성경필사를 했다고 하는데 두루마리에 했으므로 길다

양피지에 기록한 사본 모본인데 글씨의 정교함이 대단하다.

많은 문서들이 동물 가죽에다 탄소 계열의 재료로 만들어진 잉크로 새의 깃털로 쓰여졌다 한다

. 사해 문서 가운데 80% ~ 85%는 각각 고전(또는 성서) 히브리어, 사해 문서 히브리어와 원시 탄나이트(미쉬나)

히브리어로 불리는 3개의 히브리어 방언들로 쓰여졌다. 일부 문서는 아람어로 헬라어로 쓰여지기도 했다.

파피루스에 쓰여진 문서도 조금 있으나 대부분이 양피지에 쓰여졌고  

 세 번째 동굴에서 발견된 3개의 사본은 얇은 구리판에 기록되어 있었다.

성경을 필사한 사람들은 최소 3명이상으로 한 사람은 원본 성경 두루마리를 읽는 사람이고,

한 사람은 읽어주는 두루마리를 쓰는 사람,

마지막 한 사람은 읽어주는 두루마리를 쓰는 사람이 제대로 쓰고 있는지를 옆에서 확인하는 사람이다.

이토록 철저하게 성경을 기록했으므로 한치의 실수나 오차가 있을 수가 없었다

 진본이 이스라엘 국립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하니 성지순례 마지막 날 예정된 박물관 투어가 벌써 기다려진다

사본을 항아리 속에 숨겨 두었던 동굴들

로마가 이곳까지 공격해 왔을 때 그들은 성경 두루마리들을 주변 동굴에다 항아리안에 숨겨두었다.

곧 돌아와 찾으리라 생각했지만 그 생각이 현실이 된 것은 그때로부터 1,900 여년이 지난 1947년이었다.

1947년 어느날 베두인 양치기 소년은 잃어버린 양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다 언덕 꼭대기에 있는 동굴을 발견하게 된다.

그 소년은 양을 찾기위해 동굴 근처까지 가까스로 올라가 돌 하나를 동굴 안으로 던졌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항아리가 깨어지는 소리가 났다.

소년은 굴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작정하고 힘들게 겨우 동굴에 들어가 보았다.

넓고 평평하게 다듬어진 동굴안에는 질그릇 항아리가 여러개 놓여 있었는데 소년은 호기심에 항아리에 손을 집어 넣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양피지로 만든 두루마리가 손에 잡히는 것이 아닌가?

바로 이 두루마리들이  ‘사해사본’ 혹은 ‘쿰란사본’으로 불려지는 성서의 사본이다

사해사본의 발견은 이처럼  정말 기적처럼 우연히 일어났지만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후로 이 일대 동굴에 대한 발굴 작업이 1947~1956년 까지 이루어졌으며 그 결과 11개의 동굴에서

에스더서를 제외한 모든 구약성경들 사본이 발견되었고 정경 외에도 외경, 사경, 주석서까지

무려 4만여권이 넘는 두루마리가 발견되었다

쿰란 공동체 거주지에서 약 300m 떨어진 곳에 있는 가장 많은 사본이 발견되었다는 4번 동굴이다

발견된 사본의 삼분지 이가 이 동굴에서 발견되었다는데 험한 산지의 바위동굴에다 사본을 보관한 지혜가 놀랍다

고고학과 성서학자들의 연구 결과 사해사본은 BC 250년~AD 68년 사이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사해사본의 발견은 그 때까지 가장 오래된 사본으로 알려졌던

맛소라 사본 (알렙포 사본(AD925년경),레닌그라드 사본(AD1008년경))보다

무려1,000년 이상 앞선 가장 오래되고 가장 완벽한 구약성서의 사본으로 대부분의 성서 모두가 포함돼 있다.

오늘날 성서의 원본이 남아 있지 않는 상황에서 주후 10세기 경의 맛소라 사본은구약이 마지막 기록된

B.C. 400년경과 무려 1300~1400년이라는 긴 시간적인 차이가 나는 셈이므로

맛소라 사본의 정확도에 대부분의 학자들은 의심을 가지고 있었다.

 

 

*참고 맛소라 사본

원래 성경 원본은 자음으로 기록되어 있었고 고대 유대인들은 자음으로만 기록을 해도 그 내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래서 약 7-10세기경에 맛소라(전통이란 뜻)라는 유대인 학자들이 성경 내용을 정확하게 보존하기 위해서

모음 부호를 만들어서 성경에 첨가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성경 사본들을 MT(맛소라 본문) 라고 불리어지고 있다.

맛소라 사본으로는 AD 930년경에 쓰여진 알렙포사본과 약 AD 1008년에 쓰여진 레닌그라드 사본이 있다

 

주전 2세기에서 주후 1세기까지의 사해 사본이 발견되어 무려 1000 여년이나 차이가 나는

맛소라사본과 비교했을 때 내용에 있어 거의 차이가 없음이 판정됨으로써

사본밖에 없는 성경에 대한 일부 고고학적인 의심에 대해서도

쐐기를 박는 쾌거로 평가되어 성경의 정경성 확립에 큰 전환점이되기도 했다

특히 이사야서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 후대 기독교인들에 의해 예수님이 오신 후에 기록된 것이라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을때에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전 100~200년전에 기록된 사해사본이 발견됨으로서

역사적,고고학적인 증거의 뒷받침으로 인해 쐐기를 박는 계기가 되었다

이와 같은 사실은 결국 성서가 인류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 오랜 기간동안 문서들이 썩거나 훼손되지 않고 고스란히 보존되었던 것은

이 지역의 매우 건조하고 소금기 많은 기후적 특성과 기름칠한 헝겊에 싸여 질그릇 항아리에

보관되었기 때문이라는 견해들이다

정결레를 행하던 마크베라(정결탕) 인데 들어갈때 문과 나올때 문이 다르다. 빗물을 저장해서 사용했단다

이들은 성경을 필사하다가 하나님이라는 단어 (엘로힘, 야웨 등등..)가 나오면 쓰던 두루마리를 멈추고서는

정결탕에 들어가 몸을 완전히 물에 담그고 나와서 다시 필사했다는데

이사야서에 무려 544번의 하나님 단어가 나왔으니 무려 544번이나 정결례를 행하였다하니 놀라고도 놀랄 뿐이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의 제단에서 드려지는 희생제사는 드리지 않았고 대신 고유 정결의식을 거행했다,
 결국 창세기부터 시작한다면 과연 몇번이나 정결레를 해야 했을까? 정말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이렇게 철저한 성경 필사의 전통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 손에 쥐어진 성서가 세월이 지난 오늘까지도 변함 없이

 그때 그 모습 그대로 전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쿰란공동체 유적은 1949년부터 발굴되기 시작했고.

고고학자들은 제1동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집터를 발견했다.

엣센파 사람들의 주거지역인 쿰란의 발견은 1951-1956년의 최근일이며 폐허속의 주건물은 폭 27m 길이 44m정도로서

석고가 거칠게 발라져 있는 큰돌로 만들어졌고 북쪽에는 수비탑이 있으며 부엌과 식당,옹기장이 집,방앗간, 염색집,

7개의 저수탱크등이 발견되었으며, 의자, 책상, 말라버린 잉크가 담겨진 잉크스텐드가 있는 기록실이 발견되었다

 항아리 굽는 터와 골짜기에서 내려오는 빗물을 저수지에 넣기 위한 수로 

쿰란지역을 순례하면서 성경이 전해져 내려온 것이 저들의 수고와 헌신위에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안에서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증거되어 감을 새삼 깨달으며 감사했다

쿰란의 큰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모처럼 상점에서 쇼핑도 했는데 어찌나 한국사람이 많이 다니고 사갔는지

아예 물건 소개 안내문을 한글로 쓴데다 활인 쿠폰까지 준다

나도 이번 여행을 지원해준 아이들과 한국서 방문중인 사부인에게 줄 머드팩과 사해비누 몇개를 샀다

이제 예수님이 세례 받으신 세례터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