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에서 나오면서 바라다 본 마사다 전경을 한 컷!
순례여행에서 처음 맞은 주일 아침에 호텔 옆 정원에서 주일 예배를 드렸다
담임목사님께서 말씀을 주시고 장로님의 기도, 몇분의 찬양까지 아주 은혜로운 예배였는데
특히 드린 헌금은 전액 요르단에서 우리를 가이드해주신 신태훈 선교사님에게
선교비로 전달하기로 하여서 감사한 마음으로 성의껏 준비하고 헌금드렸다.
요르단을 다녀온 후 무언가 빚진 마음 이었는데 선교헌금을 드리고나니 그나마 마음이 기쁘다
아침 햇살에 황금빛으로 물든 마사다가 아름답기 까지 하다
예배후 신선한 아침공기를 마시며 황금빛으로 물든 마사다와 맑고 푸른 사해를 바라보며 잠시 간단한 운동.
마침 가이드 이 집사님의 조카분이 체육대 학생으로 한국서 이모집에 와 있던지라 그 학생의 지도로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몸을 푸니 그런대로 시원하다
마사다 국립 공원 입구
호텔에서 주일 예배를 드린후 식사를 하고 곧바로 버스로 마사다 투어에 나섰다
개인적으로 이번 성지순례서 꼭 가보고 싶은 곳 중 하나였다
이스라엘 동부의 고대 유적 마사다는 히브리어로 "요새"라는 뜻이며 사해(死海) 서쪽 연안 유대사막
동쪽에 우뚝 솟은 거대한 바위 절벽에 자리잡은 고대의 왕궁이자 요새이다
높이 434 m 길이 620m, 폭이 120m. 그 둘레가 1.300m로 마름모꼴의 평평한 고원을 이루고 있고
사방이 가파른 절벽으로 되어 있어 쉽게 정복할 수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이다.
마사다는 1838년에 사해를 여행하던 두 미국인 학자 E.Roinson과 E. Smith가
우연히 이 거대한 바위산 위의 페허의 흔적을 발견하여
그 후 많은 탐험가들이 마사다의 비밀을 밝혀내다가 드디어 1963~1965년까지 이스라엘 정부에서
유태인 고고학자 이가엘 야딘(Yigael Yadin)이 주축이 되어 발굴하기 시작하였다
2000여년 동안 이 요새가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았던 것은 이 곳으로 올라가는 길이 험난하고 어려웠기 때문이다
2001년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입구에서 들어가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홀에 전시된 마사다 모형이다
마사다 요새는 사방이 절벽인 거의 직사각형 모양의 고지대에 지어진 매우 견고한 성채이다
BC 2세기 경 마카비 왕조의 대 제사장이었던 요나단(BC161~143)이 최초로 요새화하였고
BC 37~31년 동안에 헤롯대왕이 견고한 요새로 건축하였다
로마를 등에 업고 유대 왕이 된 헤롯은 유대인의 반란과 로마의 배반을 두려워하여
유사시에 피난처로 삼기 위해 마사다를 건축하였다
그러나 정작 헤롯 당시에는 아무런 반란도 없어서 그는 이 요새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죽었다
서기 66년부터 시작된 유대인의 로마에 대한 반란이 로마의 월등한 군사력에 밀려 번번히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 주후 70년 예루살렘의 함락과 더불어 성전의 파괴로 끝을 맺게 되자
이에 굴복하지 않은 "열심당원" (셀롯당)이라 불리는 극우파 민족주의자들과 그들의 가족 967명은
이미 66년에 당시 소수의 로마 군인들이 지키고 있던 마사다를 점령하며 끝까지 로마에 항전하였다
로마 군은 2년에 걸쳐 여러 차례 요새를 공격했으나 성벽은 무너지지 않았고,
이에 로마군은 요새 꼭대기의 견고한 성벽을 파괴시키기 위하여 서쪽의 고원과 같은 높이의 거대한 성채를
쌓아올려 공성퇴(Battening Ram)를 끌고 올라 갈 수 있도록 6개월에 걸쳐서 거대한 경사로를 축조하였다.
유대인들의 격렬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공성퇴가 성벽을 무너뜨리게 되었고 결국 AD 73년에
로마 황제 베스파시안때에 제 10군단의 실바 장군에 의해 마사다는 함락되고 만다
그러나 로마군이 마사다에 당도했을때 마사다에는 시체들만 남은
참으로 참혹하고 놀라운 풍경에 그들은 망연자실했다
마사다가 함락되기 그 전날 유대인들의 지도자 엘리에제르 벤 야이르(Eliezer ben Yair)는
모두를 모아 놓고 다음과 같은 요지의 연설을 하였다.
"우리는 로마를 섬길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 한 분 만이 참되시고 의로우신 만인의 주시다 .
이제 내일이면 우리의 부녀자는 치욕을 당하며 우리의 자녀들은 노예로 팔려가고 우리는 참혹한 죽음을 당할 것이다.
우리에게 자유가 있을때 우리 스스로 명예로운 죽음을 맞이합시다!
로마 군인들이 쳐 들어왔을때 우리의 죽음을 보고 경탄하도록 합시다!"
이에 가장들은 그들의 율법에 자살은 금지되어 있었으므로 먼저 처 자식을 칼로 죽였고
남자들은 제비를 뽑아 10명을 뽑고 이 10명이 나머지 남자들을 죽이고 다시 1명을 뽑아 9명을 죽이고
최후의 한 사람은 자결하므로 967명중 960명이 죽었고 7명이 살아 남았다
나이 많은 여인 한명과 엘리에젤의 친척 여인 한명이 5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몸을 숨겼다
살아남은 부녀자 2명과 5명의 아이들이 그 당시 상활을 로마군에게 말하여
마사다의 비극이 알려지게 된 것이다
진정한 승리자는 마사다를 함락시킨 로마가 아니라 바로 유대인이 아니었을까?
마사다가 함락 된후 AD 135년에 하드리아누스 로마 황제때 유대인들은 강제해산되어
1945년 5월 14일에 건국될때까지 세계 각처에 디아스포라로 살아가는 나라없는 신세가 되었다
이 요새는 1963∼1965년에 실시된 발굴 조사로 요새의 2/3가 발굴되었다.
서쪽의 궁전과 북쪽의 험한 벼랑을 깎아서 세운 낭떠러지의 3단 테라스식 현애 궁전(懸崖宮殿) 및
1천여명 이상의 저항군이 이용할 수 있는 부피 4000㎥의 큰 물 저장소와 거대한 곡물창고,
로마식 큰 목욕탕 등이 확실하게 드러났다.
산 기슭 주위에 로마군이 쌓은 네모진 진지의 흔적이 있으며, 파피루스 문서도 발굴되었다.
케이블 카에서 내려서 요새로 들어가는 문이 보인다
이 역사의 현장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3~4㎞의 구불구불한 급한 경사로를 따라 걸어 올라가는 길과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는 방법이 있다,
올라가기 전 기념관에서 마사다와 관련된 영화를 10분 정도 관람하고 올라가는데,
마사다를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
우리는 시간도 건강도 허락지 않아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지만
배낭을 메고 뜨거운 태양아래 걸어가는 사람들이 더러 보이는데 멋지고 부럽다!
사실 케이블카를 타고 마사다로 올라갈 것이 아니라 걸어서 가는 것이 훨씬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저들이 진정한 순례객들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헤롯은 맛사다를 빙둘러 성벽을 쌓고 군데 군데 38개의 탑을 세웠고 탑 안과 성벽에 붙은 방이 110개 였고
대 중 소의 목욕탕이 나란히 발굴되었는데 이것은 정결의식을 행할때 하는 마크베가 아닌가 싶다
유대 율법에 따르면 마크베(정결탕)에 사용되는 물은 하늘에서 떨어진 순수 빗물로 채워져야 하기 때문이다
제2 성전시대 (BC 520~516년 스룹바벨이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축)의 마크베는 아직 하나도 발견된 적이 없었다
발굴을 계속하다 성벽의 한 방에서 파편더미를 치우자, 옷,이불 바구니등,
살림살이와 함께 두루마리 구약성서가 발견되었다
그것은 양피지에 쓰여진 시편 81~84편이었고 판독한 결과 AD 40년 이전에 쓰여진 것이었다
그후 마사다에 나온 구약 두루마리 성경과 문서들은 모두 14개이다
(시편, 레위기, 에스겔, 신명기 부분들과 유태민족이 해방된 기쁨을 적은 희년서.
그리고 외경인' 벤 시라'의 '지혜서' 등이었다
바위에 검은 줄이 그어져 있는데 아래는 옛 원형 그대로이고 위는 복원한 것이라 한다
옛 헤롯 궁전 모형 앞에서 한 컷!
이곳이 최후의 자결을 한 장소로 추정되는 곳이라는데 회당자리 같다
마사다에 있었던 회당 유적을 설명한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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