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상식과 용어

영지주의(Gnosticism)

bonitahuh 2022. 10. 15. 09:14

영지주의(Gnosticism)는 ‘지식’을 뜻하는 헬라어 ‘그노시스'(gnosis)에서 파생하였는데, 그 지식은 단순한 지식이 아닌 구원에 관한 지식(salvific knowledge)을 뜻한다

고대에 존재하였던 혼합주의 종교 운동 중 하나로, 다양한 분파가 존재하지만 전반적으로 불완전한 신인 데미로고스가 완전한 신의 영(프네우마)을 이용해 물질을 창조하였고, 인간은 참된 지식인 그노시스를 얻음으로써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구조를 지닌다.

정통파 기독교와 영지주의의 본질적인 차이는 정통파 기독교에서는 구원이 믿음 (신앙.faith)을 통해 가능하다는 견해를 가진 반면 영지주의에서는 구원이  지식(gnosis)을 통해 가능하다는 견해를 가진 것에 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에베소서 2:8-9)

 

그리스도께서 제시하는 구원은 특별한 계시를 얻은 몇몇 소수의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거저 허락된 것입니다 (요한복음 3:16).

 

영지주의는 처음 3세기 동안 초기 교회를 위협했던 가장 위험한 이단으로  플라톤과 같은 철학자들의 영향을 받아

두 가지 그릇된 전제를 기반으로 삼고 있다.

첫째, 정신과 물질에 관한 이원론으로 물질은 본래 악하고 영은 선하다고 주장한다
둘째, 영지주의자들은 특정 소수에게만 알려져 있는 "더 높은 진리", 곧 향상된 지식을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기독교는 진리의 근원은 하나라고 주장하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인 성경이며, 이것만이 믿음과 실천의 유일하고도 흠 없는 규정이라고 믿는다 (요한복음 17:17; 디모데후서 3:15-17; 히브리서 4:12).

성경은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기록된 계시로서 결코 사람의 생각, 사상, 저술, 또는 비전에 의해 대체될 수 없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예수는 신화다>나 <다빈치코드> 등은 모두 영지주의의 현대적 부활이라는 성격이 농후하다. 뉴에이지운동의 범신론적 성격도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허호익, 2016).

 

한편, 영지주의자들은 영지주의 복음서로 알려진 초기의 다양한 이단적인 문서들을 사용하는데, 이것은 소위

“성경의 잃어버린 책들”이라고 그들이 주장하는 위조 문서들의 모음집이다

 초대 기독교 교부들은 영지 주의적인 책들을 예수 그리스도와 구원, 하나님과 다른 모든 중대한 기독교 진리에 대하여 거짓 교리들을 신봉하는 사기적인 위조 문서들이라고 거의 만장일치로 인정 하였다.

영지주의적인 "복음서들"과 성경 사이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상충되는 내용들이 있습니다. 소위 기독교 영지주의자들이 성경을 인용할 때조차도, 그들의 철학과 조화시키기 위해 성경 구절들을 변개시키는데, 이는 성경이 엄격하게 금하고 경고한 일이다 (신명기 4:2, 12:32; 잠언 30:6; 요한계시록 22:18-19).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기독교와 영지주의는 굉장히 다르다.

영지주의자들은 예수의 육체는 실제가 아니라 단지 육체적으로 “보였을” 뿐이라고 믿는다.

그분의 영은 세례 때에 그리스도에게 내려왔다가 예수께서 십자가 상에서 처형되기 직전에 떠났다고 믿는다.

이러한 견해는 예수님의 참된 인성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속죄까지도 파괴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참으로 하나님이셨을 뿐만 아니라, 죄를 대신할 수 있는 대속물이 되기 위해 십자가 상에서 실제로 고통 당하고 죽으신 (육체적으로 실제) 사람이기도 하셨다 (히브리서 2:14-17).

예수님에 대한 성경적인 견해는 그분의 충만한 신성 뿐만 아니라, 그분의 완전한 인성을 확언하고 있다.

영지주의는 진리에 대한 접근에 있어서 신비주의적이고 직관적이며 주관적이고 내면적인 접근에 그 바탕을 두고 있는데, 이것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점에 있어서 에덴 동산에까지 거슬러 올라 가는 오래된 접근이다.

사탄은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과 그분이 하신 말씀에 의문을 던지며,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거절하고 거짓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였습니다. 사탄은 오늘날에도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으면서” (베드로전서 5:8) 똑같은 일을 합니다. 그는 여전히 하나님과 성경을 의심하도록 요구하면서, 순진하고 성경을 잘 모르는 사람들 혹은 특별하고 독특하며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감을 느끼게 하는 어떤 개인적인 계시를 찾는 사람들을 그물로 사로 잡습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여야” (데살로니가전서 5:21)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유일한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모든 것들을 점검해야 합니다.

좀 더 자세하게 접근한다면 앎으로, 사람의 기원이 신성에 있음을 알고, 이 깨달음을 통해 사람의 구성 중 영적요소인 영혼은 물질세계를 벗어나서 자유롭게 된다는 주장이다. 그런 영향으로 기독론에서 있어서도 정통진리와는 완전히 다르게 주장하는데 예수는 단순한 메시아로 화신하여 나타난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영지주의에 대해 우리는 엄격하게 정죄 또는 배격 한다. 그러나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닮아 가고 있다. 다시 말하면 언제부터인가 영지주의의 현상이 우리들의 신앙생활에서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 우려된다.

영지주의 사상의 적용은 이렇다. 영은 선하고 물질은 악하다고 하는데 심지어 하나님은 물질세계와 아무 관련이 없다고 말하며 악은 물질에서 나왔기에 하나님은 물질세계와는 상관이 없는 존재라고 하기에 이르렀다. 그 산물이 이원론적 사고가 나오게 되어 구원도 영적인 영역에만 국한시킨 결과 금욕주의 아니면 자유방임주의라는 두 가지 극단주의 사상이 영지주의에서 나오게 된 것이다.

오늘날 영적지형도를 볼 때에 신 영지주의(新 靈智主義)라고 표현하고 싶을 때가 많다. 구원은 분명 믿음을 통해서만 누리는 것이다. 그리고 믿음이 구원을 가져오기에 다른 조건을 첨가하게 되면 다른 복음이 된다는 것이 절대 진리가 된다. 그런데 이런 절대 진리를 적용하여 요구되는 믿음의 현상과 열매와는 사뭇 괴리감이 있게 되어버린 현실이 영지주의 현상과 흡사하다는 점에서 두렵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것을 신 영지주의라고 정의하고 싶은데 안타까운 영적 현실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자유방종이다. 음주나 흡연, 도박, 마약, 동성애, 폭력, 범법 등 기타 행위가 구원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라며 개인과 교회 공동체 안에서 점점 합리화되고 있다. 그러나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말라고 하셨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갈 5:13)

둘째, 행함의 신앙생활을 부정하는 것이다. 근본적인 신앙행위를 우리는 목숨처럼 알고 지켜왔다. 주일성수를 비롯한 십일조 생활이나 헌신의 삶을 한국교회가 강조하며 지켜왔다. 이제는 어떤 것이든 강조를 하면 율법주의라고 매도한다. 그러나 믿음이 행함과 함께 일한다고 하셨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약 2:22). 

셋째, 천국에서의 부활영생을 잊고 산다. 막연한 천국이 아니다. 분명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육체를 입고 오신 성자이셨으며, 그 육체가 부활의 육체가 되셔서 승천하셨음을 믿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땅에서의 절대 소망은 우리의 부활 이후의 영원한 천국의 삶 즉 부활영생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교회나 교계도, 목회자들과 성도들의 가치관과 행위들이 오로지 이 땅이 절대 영원한 소망인 것처럼 보이는 삶의 가치관이나 삶의 모습들이 두렵다는 것이다. 세상을 등지고 살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한국교회가 지금 코로나19로 인해 전무후무할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다. 누구를 원망하거나 탓하지 말자. 반대로 냉정하게 하나님께

출처 : 기독신문(http://www.kid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