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은 크고 작은 박물관이 3백여개나 되는 전 세계에서 인구 대비 박물관이 가장 많은 나라중 하나다
박물관은 그 나라의 역사의 현장이자 미래를 바라 볼 수 있는 곳이다
1965년에 개관한 이스라엘 국립 박물관은 예루살렘 기바트람 언덕 근처에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인정하는 박물관이다
인근에는 성경 박물관과 이스라엘 국립 고고학 연구소, 이스라엘 국회의사당,
이스라엘 대법원, 예루살렘 히브리 대자연과학대학인 기바트 람 캠퍼스가 위치한다.
성경시대에서 부터 예수님 시대, 그리고 근대에 이르기까지의 유물들과 예술 작품들,
그리고 동서양의 문물까지 50만여 점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스라엘 박물관에서 가장 중요한 두 곳을 들라면 그것은 단연
1947년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두루마리 성경과 여러 필사본인 사해 문서가 전시돤 성서의 전당과
박물관 야외마당에 기원전 66년 로마가 예루살렘을 파괴하기 이전에 있던
예루살렘의 건물과 사원들이 철저한 고증을 거쳐 복원된 모형으로 전시되어 있는데
2000여년전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 성을 한눈에 살필 수 있으며 무엇보다 성전 모형을 볼 수 있다.
박물관 마당에 세워놓은 조형물인데 무슨 모양을 표현한 것인지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네?
사해문서을 보관하고 있는 성서의 전당
쿰란 공동체 에세네파의 사상과 같이 '빛과 어둠' '선과 악'을 표현하기 위해 왼쪽 검은 대리석 벽과
사해문서 보관실인 오른쪽 사해관은 하얀색 타일로 대조를 주었다
쿰란에서 발견된 사본 중에 빛과 어둠의 아들들의 전쟁이라는 책의 내용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성서의 전당 건물 형태는 사해 사본이 발견된 항아리의 뚜껑 모양을 그대로 형상화한 것이다.
이 건물은 흰색 타일로 장식되어 있는데 이것은 빛의 아들을 상징하는 것이다.
전시관 지붕에 쉴새없이 물 분수를 뽑아 올려서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시켜 준단다
지상으로 보이는 흰 돔은 지붕이고 박물관 자체는 지하에 들어 있다.
검은 대리석 벽 옆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으며 입구에서 사해사본실까지 이르는 지하 통로는
무등변 사변형 아치들이 서로 엇갈리게 연속되어 있어서 마치 본래 그 사본들이 보관되어 있던 동굴을 실감케 한다.
실내 온도와 습도는 항상 일정하도록 조절되어 있어서 진열된 사본의 부패를 방지하고 있다.
남쪽으로 검정색 돌로 쌓아올린 벽은. 어둠의 아들들을 상징하는 것이다.
사해 사본관 실내는 철저한 촬영금지 구역인데 이 사진은 인터넷에서 살짝 빌려온 사진으로
금지 구역인데도 촬영한 사진이 퍽 유쾌하지는 않다
출입구로 들어가면 통로 좌?우측에 쿰란에서 발견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본관으로 들어가면
중앙에 두루마리 성경의 손잡이 부분이 크게 장식되어 있으며 그 밑에 대 이사야 사본의 복사본이 전시되어 있다.
이사야 사본만이 유일하게 1-66장까지 전체가 발견되었는데 이곳에 전시된 이사야 사본은 복사본으로
진짜 이사야 사본은 정부에서 비밀리에 보관하고 있어 관계자들 외에는 그 위치를 정확히 아는 이가 없단다
전시관 주위로 다른 진짜 사본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하박국 주석, 쿰란 공동체의 규율집, 알레포 사본 등이다
고대 성경 사본들 중에 진품들은 상태를 보존하기 위해 석 달에 한 번씩 다른 내용으로 바꿔가며 전시한다..
본래 전시되었던 것은 특별한 방으로 가져 상태 보존을 위한 치료를 받고 있다가 전시 차례가 되면 석 달간 전시된다.
이사야 사본은 이런 교체 과정 없이 처음부터 복사된 가짜를 전시하였는데. 그 이유는 사본을 장시간 세워둘 경우
말라 있던 잉크도 여러 영향을 받아서 아주 조금씩 움직이며 밑으로 흘러내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란다.
양피지에 기록한 진본 사해사본 두루마리
사해관에 전시된 성경 사본들을 보면서 쿰란에서 처럼 또 한번 말할 수 없는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
잉크도 펜도 종이도 없던 그 시절에 어찌 이리도 정교하게 똑 같은 크기로 줄 하나 흐트러짐 없이 기록했는지?
분명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의 필사체인데도 마치 한 사람이 한 것처럼 똑 같은 글씨로 고른지?
실로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면 결코 할 수 없는 일 이란걸 다시 한번 실감했다
박물관 야외 마당에 전시되어 있는 예수님 당시의 예루살렘 성을 50분의 1로 축소해놓은 모형
그러니까 모형의 2cm가 실제크기로는 1m인 셈이다
현재의 예루살렘 성은 예수님 당시의 성과는 다른 부분이 많이 있다.
예를 들면, 다윗 성, 베드로 통곡 교회, 시온 산 주변은 2,000년 전에는 성안에 위치하였으며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성벽 밖에 위치하고 있다. 이것은 오스만 터키의 슐레이만 대제가 성벽을 쌓으라고 명령하였을 때
설계사의 실수로 예루살렘 성벽이 많이 바뀌게 되었다
이곳의 모형은 예수님 당시의 예루살렘 성을 입체적으로 아주 잘 만들어 전시해 놓았다.
예루살렘 성 설명도
헤롯 성전 모형도 설명 도면
헤롯 성전과 예루살렘 성
성전 북쪽 길이는 314m, 남쪽 길이는 280m, 동쪽 길이는 469m 그리고 서쪽 길이는 485m로
불규칙한 장방형을 하고, 예루살렘 구시가의 약 1/6의 면적을 차지한다
성전 출입문
계단 바로 위의 문은 여인들의 뜰과 이스라엘의 뜰(사제들의 뜰)을 이어주는 대문, 니카노르 문
안쪽에 성전과 붙은 문은 지성소로 들어가는 출입문이다
붉은 기와집은 성전 남쪽으로 난 왕실 회랑
성전 성벽 바깥 기드론 골짜기
성전 동편에 나 있는 수산문, 오늘날의 황금문 자리
로빈슨 아치,
이스라엘이 1967년 6일 전쟁에서 승리한 후 이곳을 발굴하다가 로바 병사들에 의해 파괴되었던
아치형 다리의 잔해를 확인하게 되었다
성전 서남쪽 모서리를 중심으로 나 있는 다리로 성벽 벽면에 약간의 흔적만 남았었는데
이 돌출부를 이상하게 생각했던 미국의 고고학자 로빈슨이 발견하여 아치가 있었음을 밝혀냈다.
그 후 이 아치를 로빈슨 아치라고 부른다.
아래 사진에서 벽면에 조금 튀어나온 흔적이 남아있다.
그 왼쪽으로 있는것이 통곡의 벽이다. 아치를 지나 아랫도시로 내려갈 수 있었다.
그리고 모서리에서 오른쪽 벽면에 두개짜리 문은 예수님 당시에도 출입문으로 사용 되었던
이중문과 그 오른쪽으로 삼중문이 보인다
지금은 로마 군병들이 성전을 파괴할때 성전 벽 아래로 던져버린 돌들로 인해
땅 속에 도로가 묻혀버렸던 상점들과 도로들이 발굴되었다
벽면에 약간 돌출된 부분이 보이는데 로빈슨 아치가 있던 자리이다
윌슨(Wilson) 아치.
헤롯성전의 육교가 1867년 영국의 Charles Wilson에의해 통곡의 벽 부근에서 발견되었다
지성소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다리로 곧바로 대 제사장의 집으로 연결되었다고 한다
성전산 아랫도시에서 윗도시로 연결되는 약 100m 정도의 다리의 기초가 발굴결과로 나타났다
성전산 서쪽 벽으로 연결되었던 아치는 폭이 약 13m정도였고 지금은 통곡의 벽 회당의 기도하는 곳으로 사용되고 있다
성벽 밖 기드론 골짜기 이다
박물관 내부 전시실에는 5만여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중요하고 생각나는 것만 몇점 올려본다
이건 무슨 제단이라고 들었는데 잊어 버려 모르겠고 인터넷 검색에도 없네?
텔단 석비로 아람 왕 벤하닷의 승전비 이다
아람어로 기록된 길이 32cm 폭 22cm의 이 석비 조각에는 당시 다마스커스의 왕
하자엘(열왕 19,15-18)의 비문이 아람어로 13줄로 새겨져 있는데, 이 비문 9째 줄에
‘다윗왕조’라는 단어가 새겨져 있어 다윗의 역사성에 대한 의문은 풀린 셈이다.
성경이외의 문헌에 다윗의 이름이 기록된 것이 이것이 처음이다
고라신(Ghorazon) 회당 안에서 발견된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모세의 자리'(마 23:2) 이다
이 돌 의자는 회당 예배에서 토라를 읽는 자을 위하여 마련된 것이다
고라신은 벳세다와 가버나움 인근에 위치하고 있는 고대 성읍으로 예수님께서 이곳에서 여러 이적을 행하였으나
사람들이 믿고 따르지 않아 결국 저주를 받았던 곳이다 (마 11:20, 눅10:13~15)
고라신은 현재 국립 고고학 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1962년~1964년, 1980년~1987년에 걸친 대대적인 발굴 작업에서
'모세의 자리'라고 불리는 "remembered for good" 이라는 고대 문자가 새겨진 현무암을 깍아 만든 의자가 발굴되었다
1961년 고고학자 안토니오 프로바 (Antonio Frova)는 헤롯 1세의 신도시 가이사랴의 원형 극장을 발굴하면서
한 석비를 발견하였는데 .거기에는 요세푸스의 기록과 복음서에도 기록된 예수님을 재판하여 십자가 사형 언도를 내렸던
1세기 유대 땅의 로마 총독이었던 본디오 빌라도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다..
이 석비는 본디오 빌라도가 신전을 건축하여 그 신전을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 에게 헌정했을 때에 기록된 것으로 .
이런 증거는 예수님 당시에 본디오 빌라도라는 인물이 실재했음을 증거하기에 충분하다
로마시대 십자가에 못박았떤 발에 못에 뼈까지 붙어 있다. 끔찍도 하여라
대 제사장 가야바의 납골함(Ossuary Caiaphas).
제2성전 시기인 약 1세기경의 이 유골함은 예루살렘 남쪽에 위치한 무덤에서 다른 몇 개의 유골함과 함께
1990년에 발견되었고, 이 유골함 왼쪽(위의 사진)에 "가야바의 아들 요셉"이란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로써 이 무덤이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토록 한 대제사장 가야바의 가족 무덤이었으며.
이들 유골함 가운데 하나는 가야바 자신의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이스라엘에서의 마지막 저녁식사인데 공항으로 가기전 중국식당 이라 기대를 하고 들어갔다
미역국이 나와서 반가워 얼른 숟갈로 먹어보니 완전 뜨거운 맹물에다 미역만 둥둥 넣은거다
다른 음식도 순 엉터리로 어찌 이런 솜씨로 식당을 하는지 참 양심도 없다 싶네 ㅎㅎㅎ
가이드는 이 식당 음식 맛을 알고 우리를 여기로 데리고 왔나?
그래도 종일 강행군으로 피곤들 하였던지라 시장이 반찬이 되어 다들 먹기는 하였지만......
성경에 욥바로 나오는 야포(Yafo)혹은 쟈파(Jaffa)로도 불리는 항구에서
노아의 아들 야벳이 건설했다고 전해지는 이 곳은 이스라엘에서 매우 오래된 도시들 가운데 하나이자.
또 항구가 있는 전략적인 위치 때문에 이스라엘에서 주인이 제일 많이 바뀐 도시이기도 하다.
성경에 의하면 솔로몬 성전의 건축을 위해 두로왕 히람이 보낸 레바논의 백향목이 욥바 항구로 보내졌으며(역대하 2:16),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다시스로 가기 위해 이곳에서 배를 탔다(요나 1:3-17).
또한 욥바는 베드로가 피장 시몬의 집에서 정결한 동물과 부정한 동물의 환상을 보았던 곳이고(사도행전 10:9~15),
마을에서 선행을 베풀던 여인 다비다를 다시 살린 기적(사도행전 9:36-42)이 일어난 장소이기도 하다.
욥바는 기원전 1440년경에 이집트의 투트모세 3세에게 정복당했는데,
그 당시 통치자가 지은 궁전터와 궁전으로 들어가는 문이 발굴 되었다.
욥바에서는 성 베드로 교회(St. Peter’s Church), 피장 시몬의 집(House of Simon the Tanner),.
시계 광장(The Clock Square)과 공중에 떠 있는 오렌지 나무 등을 볼 수 있다는데 우린 가이드의 설명만 버스안에서 들으며.
버스안에서 바라다만 보았는데 그것 조차 밤이라서 사진도 찍지 못하고 스쳐 지나가기만 하여 아쉽다
텔아이브 벤 구리온 공항 출국장으로 9시경에서야 도착하였다
이제 11박 12일간의 이스라엘 요르단 성지순레 일정이 모두 끝났다
몇가지 산 선물은 출국장 세금 면제하는 곳에서 영수증을 보여주니 바로 현금으로 지급해 준다. 무려 16%나 공제해준다
출국 수속은 그리 까다롭지 않아 무사히 마치고 밤 12시 45분 비행기에 올랐다.
목요일이라 안식일에 걸리지 않아 그런지 가족단위의 유대인들이 많이 탑승했는데 자지 않는 시간에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슨 책을 열심히들 읽는데(아마도 토라이거나 탈무드겠지) 더러 입술로 중얼거리는 것 같기도 한데 참으로 대단하다 싶다.
유대인의 저력이 그 곳에서 부터 나오는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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