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쟁의 배경
제2차 세계 대전이 진행 중이던 1943년 11월 27일 미국, 영국, 중극 등 3개국 정상이 참석한 카이로 회담에서
우리나라는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약속받게 된다.
그러나 일본군의 항복과 무장 해제를 명목으로 미국은 북위 38도선을 설정하여 이북 지역은 소련군이,
이남 지역에는 미국이 분할 주둔하게 된다.
6.25 전쟁의 근본 원인은 일제 강점기로부터 해방 이후 단일 정부가 아닌 독립전쟁 과정에서 좌-우 이념이라는
큰 장벽으로 인해 독립 운동가와 민족 계열들이 분열되어 남-북 정권이 들어선 것을 원인으로 짚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때에 협조적이었던 미국과 소련은 대립하기 시작했고, 정치가들 사이에서도 이념적 대립이 생겼다.
당시 미국은 38도선 조치는 일본군 무장해제 등 전후 처리를 위한 군사적인 조치였으며 잠정적 경계로 생각했다
그러나 소련은 달랐다,
만주와 한반도를 겨냥한 소련군은 진격을 계속하여 8월 13일 청진에, 22일 평양에 각각 도달하였으며
8월 말에는 이미 북한 전역을 장악하였다.
그들은 이미 38도선을 정치적인 구획선으로 인식하고 정치적인 행보를 걷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소련은 남 북간 왕래와 일체의 통신 연락을 단절시키고 통일 정부 수립을 거부함으로써
한반도의 반 영구적 정치적 분단을 강요했다
한반도 통일을 시도했던 미국도 소련과 합의에 빈번히 실패하자 ‘단일정부 수립’이라는 성급한 정책으로 방향을 틀었다.
1948년 5월 10일 38선 이남 지역에서는 UN감시 하에 자유 총 선거가 실시되어 제헌 국회가 구성되었으며,
북한 지역에서는 1948년 9월 9일 이른바 ‘흑백선서’에 의해 독자적 공산 정권인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들어서게 된다. 결국 한반도에 두 개의 체재가 들어서게 되었고 두 체제가 한반도에서 함께 양립하기는 어려웠다.
또한, 두 체재의 이념이 달랐기에 분단으로 인한 문제점이 발생하게 되었다
2. 6.25 전쟁 발발
한국전쟁은 세계 공산주의 확산을 위한 소련과 중공의 치밀한 전략과 함께 전쟁 무기를 원조해서
북한의 김일성이 일으킨 불법 기습 남침 전쟁이다.
인민군들은 1950년 6월25일 일요일 새벽 4시, 비가 많이 내리는 가운데 탱크를 앞세워 남침을 개시했다.
한국군은 일요일이라 휴가와 외출을 나가 전투 병력이 많지 않아 고전했다.
이에 맞서 자유 민주 세계는 UN 안전 보장 이사회 10개국을 소집하여 한국전 참전 여부를 투표에 부쳐
찬성 9표, 반대 0, 기권 1표로 가결됐다.
이에 유엔의 깃발 아래 전투부대 16개국, 의무부대 6개국으로 22개국이 하나 되어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해
목숨을 바쳐 싸워서 대한민국을 지켜주었다.
초반 전세는 불리하여 41일 만에 낙동강과 대구 근방, 마산 근처까지 내려왔으나 1950년 9월15일 새벽에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의 지휘 하에 261척의 군함과 1천대 가량의 비행기를 동원,
인천 상륙 작전을 성공시켰다.
이어 서울을 탈환하니 인민군은 완전히 사기를 잃고 붕괴되어 전세는 극적으로 반전되었다.
국군과 유엔군이 반격과 추격전을 벌이며 북진하여 압록강까지 진격하였으나 51년에 중공군 30만 명이 참전하며
인해 전술을 펴면서 남으로 거침없이 밀고 내려왔다.
전선은 중부지대에서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전쟁 발발 3년 만인 1953년 7월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되었다.
3년의 한국전에는 유엔 22개국에서 1백83만4천명이 참전했으며 미국 1백60만명, 영국 5만6천명, 태국 2만4천명,
기타 18개국에서 8만8천명이 참전했다.
유엔군 전사자는 3만7천921명으로 미국 3만3천870명, 영국 1천109명, 터키 765명, 캐나다 616명,
기타 18개국의 1천567명이다.
3. 대한민국 측 참전국 (UN군) 국가별 주요 참전 현황 (will be updated by the end of Dec., 2020)
참가국 첫 참전일 참전군인 수 전사자 부상자 실종자 포로
대한민국 | 1950 06. 25 | 1,269,349명 | 158,365명 | 7,100,783명 | 132,256명 | - |
미국 | 1950. 06. 27 | 1,789,000명 | 36,940명 | 92,134명 | 3737명 | 4439명 |
영국 | 1950. 06. 29 | 56,000명 | 1078명 | 2674명 | 179명 | 997명 |
오스트레일리아 | 1950. 06. 29 | 8407명 | 339명 | 1216명 | 3명 | 26명 |
네덜란드 | 1950. 07. 16 | 5322명 | 120명 | 645명 | - | 3명 |
캐나다 | 1950. 07. 26 | 25,687명 | 312명 | 1212명 | 1명 | 32명 |
프랑스 토고(프랑스령) |
1950. 07. 29 | 3421명 | 262명 | 1008명 | 7명 | 12명 |
뉴질랜드 | 1950. 07. 30 | 3794명 | 23명 | 79명 | 1명 | - |
필리핀 | 1950. 09. 19 | 7420명 | 112명 | 229명 | 16명 | 41명 |
터키 | 1950 10. 17 | 14,936명 | 741명 | 2068명 | 163명 | 244명 |
태국 | 1950 11, 07 | 6326명 | 129명 | 1139명 | 5명 | - |
남아프리카연방 | 1950. 11. 16 | 826명 | 34명 | - | - | 9명 |
그리스 왕국 | 1950. 12. 01 | 4992명 | 188명 | 459명 | - | - |
벨기에 | 1951. 01..31 | 3498명 | 104명 | 336명 | - | 1명 |
룩셈부르크 | 1951. 01.31 | 83명 | 2명 | 15명 | - | - |
에티오피아제국 | 1951. 05. 06. | 6037명 | 122명 | 536명 | - | - |
콜롬비아 | 1951. 05. 08 | 5100명 | 163명 | 448명 | - | 28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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