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행

서울 성곽길 탐방 1.(남산 성곽, 2012.03.10)

bonitahuh 2022. 11. 7. 04:33

 

서울 성곽을 다 탐방하기로 하고 북악산과 인왕산 성곽에 이어 오늘은 남산 성곽길 탐방에 나섰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지하철을 두번씩 갈아타고 동국대 입구 역에서 하차하여 5번 출구로 나와 조금 올라 가니 

성곽길 표지판이 나온다  이제 부터 표지판을 따라 쭉 걸으면 된다

어수선한 집들을 지나 성곽 초입길에 이른다

 

조금 걸어가니 신라 호텔을 끼고 걷는데 호텔 뒷 정원이 훤히 보인다 호텔 정원에 서 있는 동상

 

그렇게 조금만 걸어가다 보면 나무 데크로 길을 내어 산책하기에도 조깅하기에도 좋은 길이 나온다.

이곳은 신라호텔 사유지로 서울문화사업 발전을 돕고자 일반인들에게 공개했다는 산책길이다.

그래서인지 길도 잘 닦여 있으며 멋진 소나무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성곽 마루에서 사과 두개를 나워 먹고 잠시 쉬었다가 간다

   국립 극장 이름이 해오름 극장으로 바꿔었네

  남산 성곽은 걷는 길이 이어졌다 끊어졌다 한다 .

그러다 보니 길도 건너고 극장 앞도 지나고 남산 산책로도 걷다가 다시 성곽길로 접어 들곤 한다

남산 성곽 탐방로 중에서 제일 가파른 길이다지나가는 젊은 사람들에게 사진을 부탁하니

우리 부부보고 참 보기 좋다고들 다들 말하니 그런가?ㅎㅎㅎ

드디어 성곽길 탐방로 맨 끝인 전망대에 올라서

남산 타워 전망대에서 둥글게 빙둘러 친 커다란 유리 창으로  멋진 울의 모습이 다 보인다

고궁도 보이고 한강도 보이고 청계천도 보이고 산이 많은 서울은 참 멋지다!

 꼭대기 전망대에서 한층 내려 오면 있는 커피솝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여러가지 글귀들 사랑의 글도 있고

자기의 소망을 담은 글귀도 있고 다른 격려의 글귀도 있고....남산 타워 전망대에 있는 간단한 기념품 가게들

남산 팔각정 앞 광장에서 벌어진 국악 사물놀이 한마당과 전통 무예 시범들 

남산 봉수대 앞에서남산 팔각정에서

사랑의 글귀를 담은 열쇠가 주렁 주렁 달린 나무에 사랑의 열매가 주렁 주렁 달렸네

 

너무 이쁘고 멋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으로 섬세하고 센스가 있다

중국의 장가계에 갔을때 천하제일교 다리 난간에도 이런 동심쇄가 빼곡히 걸려 있었는데

간단히 이름만 적힌 녹슨 자물쇠만 잔뜩 걸려  있어서 이런 이쁜 모양은 전혀 아니었다

온갖 이쁜 색갈과 모양의 사랑의 글귀를 담은 메모지와 함께 열쇠를 매단 사랑의 맹세들

젊은 연인들이라면 결코 이 곳을 무심코 지나지는 않고 꼭 사랑의 맹세를 담은 메모와 열쇠를 잠그고 갈 테지?

아! 아름다운 젊은 날이 부럽기만 하네..

남산 타워로 가기 위하여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커다란 실내

간단한 커피숍도 있고 빨 집도 잇고 기념품 점도 있고 곰 인형과 캐릭터 점도 있고 밖을 내다 볼수 있다

남산 타워에서 내려오면서 본 성곽의 모습

 이 곳은 바로 성곽 옆으로 걸을 수는 없고 옆으로 바라보면서 큰 길을 따라 걷는다 

남산 산책길에서 바라다 본 남산 타워 모습

날씨가 엄청 흐렸는데도 불구하고 디카로 찍은 내 사진 솜씨 괜찮네요

친환경의 일환으로 남산 순환버스는 전기차로 이동한다

내국인 보다 외국인이 더 많이 이용하는 모양이다

 

서울성곽 (사적 제10호)의  유래를 알아 보며는 ...
서울은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지 3년(1394)만에 조선의 수도가 되었다.

태조는 그 이듬해 궁궐과 종묘·사직을 먼저 조성한 뒤에 도성축조도감을 열어 성 쌓기에 착수하였다.

평생을 전쟁터에서 보내다시피 했던 태조로서는 성곽이 수도방위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성이라는 것은 국가의 울타리요, 강포한 것을 방어하고 민생을 보호하기 위하여 없을 수 없는 것이다 "라고 태조는 강조한 바 있다.

성안과 성밖을 구별하여 쌓은 한성의 성벽은 돌이나 흙으로 북악산등을 타고 낙산·동대문·남산을 거쳐서
인왕산 산등성이를 둘리는 총연장 18,1km로 쌓아졌다.
당시 서울의 총 인구가 5만명에 미치지 못하였는데, 성을 쌓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동원한

장정들의 수효는 4년간에 걸쳐 19만 7천여명에 이르렀다.

 

이 성에는 4대문을 두었는데, 동쪽에 흥인지문, 서쪽에 돈의문, 남쪽에 숭례문, 북쪽에 숙청문을 두었다.
그리고 4소문으로는 동북에 동소문, 동남에 광희문, 서북에 창의문, 서남에 소의문을 두었다.
조선왕조 건설의 주역이었던 정도전(鄭道傳)에의해 기본설계가 마련된 서울의 성벽은 둘레가 40리 남짓 되고,
그 후 세종 4년(1422)과 성종 10년(1479) 등 여러번에 걸쳐 중수가 있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관여하게 되면서 성문과 성벽을 하나 하나 허물어 버렸다.현재 대문 가운데
남아있는 것은 남대문과 동대문, 숙청문(1976년 복원)이며, 소문으로는 창의문과 광희문(1975년 복원),
동소문(1994년 복원)이며, 성벽으로는 삼청동, 성북동, 장충동·남산·인왕산 일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