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행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2011.12)

bonitahuh 2022. 11. 10. 11:21

 일제 강점기에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던 선열들이, 해방 이후는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던 민주화 투사들이

옥고를 치렀던 역사의 현장이다

영화에서 참 많이도 보았던 눈에 익은 서대문 형무소의 망루와 입구다

 

1908년에 경성 감옥으로 개소한 아래 1967년 서대문 구치소로 변경되어  1987년에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되기 까지 역사적 의미가 크다

1988년에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으로 새롭게 개관되어 일반인에게 공개되고 있다

형무소로 들어가는 입구와 망루 영편으로 감방들이 죽 늘어서있다

지하 고문실을 내려가보니 상상을 초월한 각종 고문 도구와 설명이 붙어 있어 일제의 만행에 치가 떨린다

우리가 익히 아는 고문 외에도 관벽 고문이라해서 사람 한사람 경우 들어갈수 있는 관에 사람을 넣고

세워두어 꼼짝 달싹도 못하게 가두오 세워 두는 것이란다

손톤 밑 기.물 고문.거꾸로 매달기.인두로 지지기. 어찌 같은 사람으로써 이리도 잔인할 수 있었을까?

지하 여자들의 감옥인데 이 곳에 유관순 열사가 순국 하였다 하여 유관순 감옥이라고도 부른다

   사형장에서 죽은 시신을 내어 가는 문

추모비 순국의 그릇(임승오 작)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순국한 독립 운동가들의 넋을 기리고 되새기기 위하여 세운 추모비다내부에는 순국 선열들의 이름이 새겨져  투영되어 있다

                                                                           

사형장입구에 있는 통곡의 미루나무

사형장으로 끌려 가면서 끝내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죽는 것을 치 미루나무를 붙들고 통곡하였단다

.입구에 쓰여 있는 안내문 원문을 옮겨 본다

"이곳의 미루나무는 1923년 사형장 건립당시 식재되어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순국선열들이 조국의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생을 마감해야 하는 한(恨)을 눈물로써 토해낼 때 붙들고 통곡했던 것으로 '통곡의 미루나무'라고 이름 지어졌다.

또한 사형장 안에 있는 또 한 루의 미루나무는 같은 시기에 심어졌으나 순국선열들의 한(恨)이 서려

잘 자라지 않는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추념탑의 중앙에는 태극기를 음양각한 조각상이 높이 22.3m로 축조되었으며, 태극기는 전국 14개도 전역에서

나타난 우리 민족의 드높은 독립 의지와 기상을 상징하고 있다.

추념탑의 좌우 길이 40m에는 독립투쟁의 역사적 활동상을 형상화한 모습이 부조(浮彫)되어 있고,

바로 아래에 순국선열추념탑기(殉國先烈追念塔記)가 새겨져 있다.

 

일제강점기에 의병투쟁, 3·1독립만세운동, 항일투쟁 등으로 투옥되어 옥고를 치르다

순국한 선열들을 기리기 위하여 조성되었다.
1987년 서울시가 법무부로부터 이곳을 매입하여 1988년 조성공사를 시작하였고,

1992년 8월 15일 광복절 제47주년을 맞이하여 독립공원으로 개원하였다